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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이 걸어온 길, 그리고 반부시 투쟁

2006년 12월 4일

아펙이 걸어온 길, 그리고 반부시 투쟁
[4월 22일(금)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열린‘APEC 대응 제 시민사회단체 워크숍’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제출자 : 다함께 김어진(kimej@jinbo.net)

1989년부터 2001년까지의 아펙의 탄생과 역사

아펙은 언제 탄생했을까? 아펙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이 더 치열해진 1980년대말의 상황과 관련있다. 애초에 아펙 창설을 주도했던 나라는 일본과 호주였다. 1989년 11월 캔버라에서 1차 회의가 열렸을 당시만 해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아펙을 자신들의 무역 블록을 튼튼하게 만들 임시적 도구로 여겼다.
일본 정부와 기업주들은 당시 유럽공동체(EC)의 경제블럭과 나프타(NAFTA) 같은 미국 중심의 경제블럭 형성을 막을 도구가 절실했다.
호주의 이해 관계도 있었다. 호주 지배자들은 아펙을 활용해서 미국과 일본의 경쟁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다. 예를 들어 호주가 동티모르와 솔로몬 군도에 호주군 파병을 공표했던 것도 아펙 회의를 통해서였다.
한국 정부도 아펙의 주요 창설국 가운데 하나다. 당시 호주 노동당 정부 수상 밥 호크는 도쿄에서 일본의 장관들을 만난 뒤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아펙을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입장은 어땠을까? 아버지 조지 부시는 일본과 호주가 창설한 이 기구가 마뜩지는 않지만 이 기구를 일본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 캐나다와 함께 아펙 회의에서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미국 지배자들이 갑자기 아펙을 신주단지 모시듯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 탄생을 위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난항에 빠지던 시기와 일치한다. 1986년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급기야 1993년 클린턴은 시애틀에서 1차 아펙 정상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클린턴은 “1993년 시애틀에서 열린 제1차 정상회의 때 18개국 정상을 모아놓고 지지부진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타결짓기 위해 유럽연합에 공동으로 압력을 가할 것을 제의했다. 다른 정상들도 이에 동조했고 결국은 그 해 12월 장장 7년 동안의 협상과정을 마무리짓고 우루과이라운드에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케 했고 이로써 세계무역기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APEC에의 새로운 기대’, ≪세계경제≫ 2004년 6월호.)
“아펙은 UR 협상이 비틀거릴 때 자유무역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이지 아펙 저명인사 그룹의 위원장인 버그스텐은 아펙이 좀더 고감하게 행동한다면, 즉 회원들의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거대한 장벽이 있는데 아펙은 세계무역자유구조에서 완전히 새로운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이코노미스트지, 1994년 11월 12일)
1993년 아펙 시애틀 정상회의는 미 강대국이 아펙을 자신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유럽이라는 경쟁자를 누그러뜨려 WTO의 농업 협상을 매듭짓기. 이것이 아펙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바로 그 ‘치적’이다.
더욱이 미 행정부와 기업들은 옛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의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이 절실했던 터였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신아시아전략’을 만든 유럽과 동남아 시장에 무역투자 블록을 형성한 일본을 제어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1998년 일본한테 임업과 수산업에서의 관세와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을 종용했고 일본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지지를 받아, 미국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지지를 받아 으르렁거렸다. 한마디로 아펙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도구였다.

아펙의 새로운 임무 :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기

1. 상하이 APEC 회담(2001년)
· 1989년 출범한 아펙이 사실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아펙 회원국들 일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 계기는 2001년 상하이 회담이었다.
외교안보연구원은 아펙이 새롭게 부상하게 된 계기로 2001년 상하이 정상회담을 꼽는다.
“실제로 최근에는 아펙 정상회의가 원래 아펙 의제와는 상관없는 다양한 정치 안보적 이슈에 관한 효과적인 고위급 협의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상 문제와 안보 문제 등 의제간 연계성 심화라는 흐름의 바탕 위에서 정상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아펙 내 정식 의제로서 안보 의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상하이 회담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채택했다. 아펙의 주요 회원국들은 아펙이 자유무역만이 아니라 안보에 관한 실질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아태 지역에서 중요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아시아 태평양 정상들은 테러에 반대하는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인구 가운데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인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부르나이의 정상들은 공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지지하는 언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상들 가운데 그 누구도 워싱턴을 비난하는 언사를 쓰지 않았다.
어쨌든 부시는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던 것에 부시는 크나큰 자신감을 얻었다.

2. 태국 방콕 APEC(2003년)
· 부시는 실질적으로 태국 방콕 아펙 회담에서 파병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논의들을 이끌어 냈다. 정상회담에서 노무현은‘항구적 자유 작전 참여로 적극적인 반테러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 2003년 태국 정상회담은 아펙 회원국들의 군사주의적 안보공약을 실제 이행하기 위한 아펙 회원들간의 합의를 이뤄냈다. 2001년 상하이 회담 때에 이런 조치들을 이끌어 내려다가 부분적으로 갈등이 빚어졌던 것에 비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대단한 진전이었다.
2001년에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의제에 관해서 회원국들간 다소 이견이 있었다.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은 시큰둥했고 미국·러시아·일본·호주는 적극 찬성이었다. 그러나 수차례 고위관리회의를 거쳐 태국 정상회의에서 이 의제가 최종 채택됐다.
2003년 태국 정상회담에선 ‘인간안보’의 개념이 채택되고 APEC 반테러대책반(CTTF)이 구성됐다.
다섯 차례 회의를 통해 해상보안 강화, 대테러 역량 강화 등 12개 국제협약 가입 권고 수정 문안에 합의했다. 군사주의를 위한 구체적·실질적 조치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2003년 10월 방콕 정상회담에서는“인간 안보”라는 말이 탄생했다. 인간안보를 그들은 이렇게 정의내렸다. “테러집단의 위협 제거를 위한 테러와의 전쟁”.
경제 교역과 안보가 직결돼 있다며 10개 항목의 대테러 조치가 승인됐다.
테대러 역량 강화, 생물테러 예방, 보건안보 강화, 기계 판독 여행증명서 발행, 12개 국제협약 가입 권고 수정 문안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IAEA 추가의정서 서명 및 비준도 포함돼 있다.
CTTF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감히 테러방지법의 국제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 아펙의 방향 설정과 관련해서 G-8을 선례로 삼자는 주장도 꽤 널리 퍼져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합의를 도모하는 방식 말이다.
· 결국, 아펙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APEC의 변화한 성격을 염두한다면 반부시야말로 APEC 반대 투쟁의 중요한 초점이 될 필요가 있다.

3. 2004년 칠레 APEC, 그리고 7만여 명의 반부시 투쟁
· 칠레의 산티아고 구상을 보더라도 2004년 칠레 APEC에서도 어김없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와 추가 파병 등이 논의됐다.
무엇보다 칠레 APEC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APEC이 거대한 반부시 투쟁에 직면해야 했다는 점이다. 7만여 명이 부시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
정상회담이 시작하고 칠레 사회포럼이 끝나는 날 대중적 규모의 반부시 행진이 이어졌다.“칠레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부시야말로 테러리스트다”같은 구호들로 형형색색의 다양한 반부시 팻말과 플래카드들이 나부꼈고 다양한 세력들이 반부시로 운집했다.

4. 2005년 APEC
· 미국식 중동 ‘민주주의’에 관한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자리가 될 것이다.
· 파병연장동의안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 아시아 태평양에서 반부시, 이라크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한국 사회 운동이 단결해서 아시아 태평양에 부시 독트린을 침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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