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참세상) [존 몰리뉴] 영웅주의, 대리주의 버리고, 계급적 복수를

2006년 12월 4일

[존 몰리뉴] 영웅주의, 대리주의 버리고, 계급적 복수를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크리스 하먼의 강연 이후 존 몰리뉴의 ’맑스주의와 테러’에 관한 강연이 진행됐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통해 테러가 가지는 한계성는 계속 밝혀져 왔다"고 지적하며 "개인의 복수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역사의 복수, 계급적 복수"를 위해 "노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강연 이후 한 발언자는 "존 몰리뉴를 보니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은 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는 존 몰리뉴의 커다란 덩치를 빗댄 농담을 건네 강연장이 한동안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하의 내용은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테러는 대중 투쟁의 역할을 개인이나 소수가 대체하는 것

맑시스트들에게 테러라는 개념은 최근의 논쟁이 아니다. 낯선 주제가 아니고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다. 911과 런던 테러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논쟁하고 논의에 참가할 때 테러와 관련한 오랜 논의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응집력 있게 대응할 수 있었다. 테러와 관련한 주제는 맑스주의자들에게 있어 새로운 주제도 아니고, 맑스주의가 태동할 시기부터 있어 왔다.

맑스와 엥겔스 가입했던 의인동맹이란 조직이 국제사회주의 동맹이 됐고, 맑스와 엥겔이 공산당 선언을 쓰게 됐다. 이들은 의인동맹의 음모론을 버리도록 설득하고 나서 의인동맹에 가입했다. 당시에 음모라는 것은 오늘날의 테러리즘이 가진 의미는 아니었지만 원칙적으로는 같다. 비밀조직을 가지고 역모를 해서 쿠테타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맑스는 그런 ’음모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맑스는 ’공개적인 활동을 통해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맑스가 테러를 반대했던 것은 맑스의 역사관과도 연결된다. 맑스에게 역사변혁의 추동력은 계급투쟁에 있다는 것, 개인적 영웅적 행위나 장군이 치르는 전쟁이 아닌 수백 수 천명의 대중이 함께 투쟁할 때만이 역사는 변한다고 믿었다. 테러는 부르주아가 가진 역사관의 거울이다라고 할 수 있다. 영웅적인 개인의 행위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믿었던 부르주아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테러는 계급이 대중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역할을 개인이나 소수가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테러는 노동계급이 주창하는 내용과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내용이다. 맑스는 당시에 유토피아적이고 음모론에 기대는 주장에 반대하며 맑스주의의 테러에 대한 반대 입장을 취했고, 본격적으로 정착됨으로써 러시아 혁명과 맑스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 1세대 혁명세력은 ’나로드니키’였다. 대부분 지식인들이었고, 짜르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컸다. 대안적인 세력으로 희망을 걸었던 것이 농민들이었고, 이상주의적으로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민들과 함께 변혁을 기도했지만 그게 잘 안되자 이들은 테러를 택하며 짜르와 측근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맑스주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선택의 기로에 있어서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 입장이었다.

테러리즘, 대중투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테러리즘을 어떻게 볼 것이냐, 어떤 계급이 사회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주체가 될 것이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레닌도 테러리즘에 반대한 역사가 있다. 레닌이 테러리즘에 대해서 저술한 것이 있다. 글을 보면 몇 가지 점이 드러난다. 테러에 관한 저술을 할 때 그 글을 보면 테러리스트에 개인적인 영웅과 용맹스러움에는 존경과 존중을 표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용기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테러가 대중투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은 레닌도 단호했다. 레닌은 테러를 정당화하려는 여러 이론과 논리를 단호히 거부했다. 러시아에서 테러를 지지한 사람들은 짜르 측근을 암살하면 할 수록 국가권력이 점차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이런 논리를 단호히 거부했다. 테러로 암살을 하면 오히려 억압적인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운동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던 논리를 거부했던 것은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것과 공통점이 있다. 관련해 트로츠키는 테러는 ’폭탄을 품고있는 개량주의에 불과하다’고 했다.

다른 테러리스트는 테러를 감행함으로 대중을 감화 감동시켜 투쟁에 나서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도 말이 안 된다고 레닌은 주장했다. 레닌은 우리가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트로츠키는 훌륭하게 요약했는데, 테러가 아무리 성공하고, 목표를 달성해도 역효과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테러가 일어남으로 대중은 의식 속에서 자신의 역할은 과소평가하고 축소해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테러가 성공해 암살해도, 무역센터 초토화된다고 해도 테러리스트의 메세지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겨라, 우리 엘리트들이 대신 투쟁할 것이다’라는 메세지만 전 할 뿐이기 때문이다.

테러, 자본의 폭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

맑스주의에서 테러에 대해 두가지 더 이야기 할 것인데,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상황이다. 첫번째는 아무리 테러가 파괴력을 발휘하는 테러라 해도 테러가 자행하는 폭력은 자본주의가 자행하는 폭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지 히로시마의 원폭, 베트남 전쟁을 볼때 자본의 폭력이 얼마나 더 잔인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런 폭력을 자행한 사람들이 오히려 폭력이 자행되면 도덕적 우위를 점하면서 민간인의 희생을 강조하며 도덕론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세기 반 동안 테러리스트가 희생시킨, 무고하다는 시민과 민간인 보다 히로시마에는 단 몇 초만에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아프간과 이란에서 그런 폭력은 지금도 계속일어나고 있다. 맑스주의자들이 테러에 대해서 입장을 얘기할 때 지배계급이 가진 위선적이고, 이중적 태도와 도덕군자처럼 행하려는 것을 꼬집고 우리는 그런 위선을 절대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두번째는 맑스주의가 테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나 입장인데, 이는 무조건적인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폭력은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의 특정 시점에서는 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억압받는 민중들이 떄로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테러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립시켜 따로따로 보면은 테러일수 있고, 당연히 지배계급은 테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테러는 대중투쟁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좋은 예로 지금 현재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항을 우리는 테러라고 보지 않는다. 이라크에서의 저항은 테러가 아니다. 이라크에서 저항의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해서 전체적인 이라크 민중이 점령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투쟁을 거부하거나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분석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좌파 진영, 맑주의자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사건에 맞는 반응과 대항을 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자기만의 특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인 설명은 불가능하겠지만 몇 가지만 지적하겠다. 우선은 테러 사건을 분석할 때 우리의 대응을 논할 때 누가 그 테러를 감행했고, 왜 그랬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테러의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테러 사건이 발생하게 된 정치적 맥락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맥락과 형색을 대중과 지배계급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파악이 되고, 대중들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테러의 3가지 구분, 우파, 민족주의자, 좌절당한 급진주의자

테러를 자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의 문제에 있어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파, 신파시스트들의 테러의 예를 들면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볼로뉴아폭탄테러, 런던의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서 터진 수제폭탄(터지면서 못이 튀어나오는 폭탄), 북아일랜드에서 독립에 반대했던 민병대, 남미나 중미에서 있었던 자살 폭탄테러들도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대이다. 주장이던 행위 전략에 대해서 모든 것을 부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익이 자행하는 테러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자본이 빈축을 사거나, 크게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분류는 2차 대전 이후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테러였다. 이것의 예는 많다. 알제리 민족해방 전선, 바스크 자유조국, IRA, 알카에다를 비롯한 관련 조직들이 있다. 좌파들은 이런 테러가 자행된 이유는 억압과 빈곤에 있다고 얘기하는데 자본과 언론들은 오히려 빈라덴이 가난했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중간계급도 제국주의적 억압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지배계급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식민 국가에서 억압을 느끼고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제국주의의 통제, 지배 하에서는 중간계급들은 우리 민족이 열강에게 받는 수치를 참을 수 있는가 라며 투쟁의 의혹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싶은데, 국가권력은 아니어서 군대, 경찰이 없으니 제국주의 열강에 직접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상황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영화 ’알제리의 전투’라는 영화를 보면 알제리 민중이 프랑스 식민통지에 저항하는 내용의 중간에는 계급이 자행하는 테러를 보며 중간에서 행동 하게 된다.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그렇다. 노동계급을 우리의 희망으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기 떄문이다.

세번째 분류를 보면 이렇게 명칭을 달아보고 싶다. 좌절당한 급진주의자들. 19세기 후반 부터 20세기 까지의 아나키스트, 60-70년대 독일, 이탈리아 붉은 여단, 미국의 웨더맨(일기에보자) 영국에도 테러집단은 있었으나 영향력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에 따라서 어떠한 분류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이 달라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무조건 반대한다. 세번째 부류는 속해있는 사회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세 번쨰 부류에 대해서는 상황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좌파들, 혁명적 사회주의 맑시스트들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게 방지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탈리아 붉은 여단 좌파진영에 크나큰 타격을 줬는지 알기 떄문이다.

테러의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도 있다. 테러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테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짜르이거나, 평범한 노동자가 무고하게 희생된 것일 수도 있다. 1984년 IRA가 대처수상과 그 측근을 브라이턴 호텔에서 암살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왜 총알이 빗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7월 런던 폭탄 테러의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테러가 대상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테러의 가장 큰 오류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당시 7월 지하철 폭탄 테러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희생된 것.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다수였기 때문에 토니블레어와 전쟁에 반대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의를 할 때 서서하던 존 몰리뉴씨는 질의 응답을 받을 땐 앉아서 했다.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본다’는 질문자의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던 존 몰리뉴는
’앉아서 하는게 더 나을것 같다’는 대답을 하며 질문에 답을 했다.

중요한 것은 테러의 배경과 정치적 맥락

테러가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일어났는가이다. 예를 들어 911의 경우테러 분석의 틀과 맥락은 미국의 제국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을 환영하는 경향도 있었다. 정치적 맥락을 봤을 때 당연히 미국은 보복에 나설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무역센터가 파괴되서 주저앉는 것을 보면서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수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겠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서 런던에 있었던 지하철 폭탄테러도 연결된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영국 정부의 지지, 미국에 대한 지지 때문에 영국 테러가 일어난 것.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다. 911이후 부시는 대테러 전쟁, 하고자했던 아젠다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구실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지배계급은 더 많은 시민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더 나아가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책임을 이슬람 사람들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이런 정치적 맥락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공격이 강화됐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극우의 공격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맥락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우연이겠지만 영국 테러가 일어날 당시에 나는 맑스주의 포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행사가 그 주 주말이었다. 포럼의 행사 장소에도 두 곳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서 폭탄이 터졌다. 폭탄테러 때문에 불편을 겪은 것은 사실이나, 반전 시위와 농성을 조직해 실행에 옮겼다. 많은 활동가들이 포럼 때문에 런던에 와 있었기 때문에 농성 조직이 가능했고, 우선 대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폭탄테러 사건에 반대 한다는 입장 명확히 했고,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이 먼저 였다.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과 영국테러의 뻔한 연관성을 강조했다.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영국에 살고 있는 이슬람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농성을 발빠르게 조직해서 옮겼다. 공격당한 모스크, 인종 차별적 공격이 있었던 곳에서도 집회를 조직했다. 테러가 영국에서 일어나면서 이데올로기 싸움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블레어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려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도구로 사용하려 했고, 그리고 반대편에서 좌파들은 근본적 책임이 블레어 정부에 있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블레어의 책임이고, 노동계급이 단결하는 인종 등 모든 요소들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런 측면에서 영국 반전단체인 ’전쟁저지연합’에서 오는 9월 24일 영국의 전국적인 집회를 조직중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극악한 착취의 체제이고 폭력의 체제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이상 전쟁과 죽음 학살을 끊임없이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려면 대중적인 노동계급의 투쟁밖에 없다. 아무리 파괴력이 강하다 해도 몇몇 개인이 폭탄을 터트리거나 암살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리주의라는 것 버려야 한다.

개인의 복수로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역사의 복수, 계급적 복수다. 지배계급과 체제를 지탱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체제를 멸망 시켜야 하고 계급을 멸종 켜야 한다. 이것을 노동계급이 해야 만 한다.

2005년08월22일 14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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