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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신당파의 독선과 월권, 엘리트주의

분당론을 설파하던 사람들이 1월15일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준비위원회’ 추진을 선언했다. “기존의 당을 해산하고 새로운 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당”을 건설하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겠지만 무슨 자격으로 “기존의 당”, 즉 민주노동당의 해산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신당 구성을 위해 당 밖 단체와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들 신당파는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결정한 ‘확대간부안’도 무시하고 있고, 중앙위원들의 70퍼센트 지지로 출범한 비대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선언문에서 지금의 “비대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비대위에 이런저런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비대위가 중앙위원회를 무시하고 신당파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독한 독선이고, 비민주성의 극치다.

이들 자신의 말대로, 이들은 “작년 12월 29일의 중앙위원회 때부터 …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을 비대위 출범의 전제 조건으로 강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당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2월 29일 중앙위원회를 파행으로 만들고 무려 보름 가까이 시간을 벌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주파만이 아니라 평등파의 상당수와 다함께, 그리고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반대했는데도, 신당파는 이들 다수의 의견을 간단히 제쳐버리고 있다. 마치 옳고 그름을 자신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들은 중앙위원회가 비대위의 “필수과제를 명문화하지 않”았다면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의 진상 밝히기를 비대위의 과제로 삼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비대위의 임무로 “종북주의 청산” 등을 전제한 문구가 삭제된 뒤에야 중앙위원회에서 합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수과제를 명문화하지 않”은 게 문제라며 중앙위원회에서 명백히 거부된 김형탁 씨의 현장발의안 내용을 다시 들이미는 것은 당원들을 기만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은 심상정 비대위를 민주노동당의 비대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비대위, 즉 신당 비대위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신당파인 조승수 씨는 비대위 출범 전 인터뷰에서 “비대위 통한 [민주노동당] 쇄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신당 창당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신당파는 선언문에서도 ‘비대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똑같이 지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당 창당 전에 중간 과정을 하나 더 뒀는데, 그것은 비대위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등의 진상을 밝히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요컨대 비대위가 신당 창당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데 봉사해 달라는 셈이다. 이미 조돈문 평가혁신위원장 소동도 있었던 데다 신당파에 속한 인사들이 비대위에 합류할 것이라는 일부의 보도는 불길함을 더해준다. 신당파는 비대위를 “숙주로 삼아” 신당을 창당할 요량인가.(“숙주”론은 신당파가 선언문에서 자주파를 비난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신당파가 제시하고 있는 쇄신안은 추잡한 정파투쟁 프리즘으로 민주노동당을 본 것으로, 핵심 내용은 ‘자주파’와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첫째, 공정치 못하다. 예를 들면, 대표적 패권주의 사례의 진상과 책임자를 밝히라고 요구하면서 그들이 나열한 사건은 죄다 ‘자주파’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다. 사심 없이 당을 쇄신하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평등파’가 연루된 일들도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 ‘평당원의 목소리로 말한다’ 토론회에서 분당파의 한석호 씨가 자신들도 이런 일을 했다고, 대리투표 했고 알고도 눈감았다고 자백하지 않았던가. 또, 신당파는 회계부정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데,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원들이 공금으로 술 마시고 마사지업소 출입한 것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둘째, 거울 이미지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신당파는 ‘자주파’가 전국연합의 ‘9월 테제’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을 “민족민주정당화”하려 했다고 비난한다. “민주노동당 강령 정신과 상관 없이 당을 당 외 세력의 숙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당파는 지금 민주노동당에서 ‘자주파’를 제거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을 ‘사회민주주의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당 밖 지식인이나 언론을 끌어들여서 그렇게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자주파와 평등파의 공존을 전제로 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지금 신당파가 ‘자주파’와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민주노동당 강령 정신”을 거스르는 시도다. ‘자주파’에 맞선 신당파의 종파주의는 느슨한 다정파연합체로서 민주노동당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정파당을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당파가 내세우는 개방성과 다양성이 허울에 지나지 않는 이유다.

신당파는 심판관 행세를 하며 누구도 부여한 적이 없는 초법적 권한을 거칠게 휘두르려 한다. 한 예로 이들은 “9월테제로부터 비롯된 모든 결정들(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진보연대 가입)의 무효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주파’가 지도부에서 지배적이던 시절에 결정된 것을 무효화하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중앙위원회나 당대회 결정사항도 많을 텐데, 이제부터 민주노동당의 최고 결정기관은 당대회가 아니라 신당파이던가.
신당파는 이런 결정을 당대회에서 하자는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신당파의 태도는 누가 보기에도 열려 있고 상호 존중하는 토론의 자세가 아니다. 그들은 당대회에서 당원들이 제출해야 한다는 반성문을 이미 자신들이 써놓고 사인을 하라고 윽박지르며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의문이라도 제기할라치면 그것은 “대중의 요구에 대해 너무 무지하거나 철면피한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대중의 이름으로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하는 걸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신물난다.

토론할 마음도 없으면서, 함께하지 못한다고 이미 결론을 내려놨으면서,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제시하는 “최후통첩”을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쇄신을 이미 포기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신당파의 쇄신 요구는 진정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거 봐라, 민주노동당은 역시 안 된다’고 선언하기 위한, 너무 뻔히 보이는 음모적 수순에 불과하다.

2008년 1월 17일 다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