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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이정훈 제명을 반대한다비대위의 우경적 혁신안 반대한다

대선 이후 일부 세력들은 자주파를 겨냥해 “종북주의 청산” 등을 내걸고 파괴적 당권 투쟁을 전개했다. 심지어 자주파를 “광신자”, “사교 집단”, “기생충”이라고까지 비난했다. 비록 기존 당권파였던 자주파에게 패권적 당 운영 등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런 파괴적 행위는 분명 잘못이었다. 이런 분란 때문에 당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비대위가 필요했다.

심상적 비대위의 출범을 지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당의 위기 극복과 단결이었다. 우리는 심상정 비대위가 당의 분란을 수습하고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을 잘 준비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참히 부서졌다. 심상정 비대위는 “종북주의”를 “편향적 친북행위”라고 이름만 바꾼 채 분당파와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적 태도로 파괴적 분란에 불을 당기고 있다. 국가보안법 마녀사냥으로 구속된 두 동지를 속죄양 삼아 특정 정치 경향들을 당에서 배척하고 통제하려 한다.

“패권주의 청산”을 말하면서 총선 공천에서 패권적 전권을 달라고 한다. 당원들이 후보를 검증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묻지마’ 공천을 하겠다고 한다.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정파등록제’를 도입해 당에서 정파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주장을 가로막고 이를 거부하는 정파에겐 ‘페널티’를 주겠다고 한다.

나아가 기성 언론과 체제의 압력에 순응해 “민주노총당, 친북당, 운동권당을 벗어나겠다”고 했다. 심상정 비대위 대표의 국회 연설도 이런 내용이었다.

더구나 이런 ‘혁신안’을 고스란히 수용하지 않으면 “물러나겠다”, “중대 결심을 하겠다”며 대의원들을 협박하고 있다. ‘혁신안’이 거부되면 탈당·분당하겠다는 협박도 하고 있다.

대의원들이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혁신안’을 비판하고 수정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며 대의원들에게 거수기 노릇을 강요하는 것이다. ‘혁신안’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해 눈치를 보고 일부 내용을 조삼모사식으로 손보기는 했지만 큰 줄기는 전혀 바꾸지 않았다.

더구나 심상정 비대위의 이런 방향을 우리 운동의 적들이 칭찬하는 현상은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이런 노력이 잘 뿌리내려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 건전하고 합리적인 진보 세력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명박도 “잘 진행된다면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금 상황은 결코 심상정 비대위 대표가 말하듯 “낡은 요소라는 골리앗과 혁신을 위한 다윗의 싸움”이 아니다. 기성 체제와 언론, 심지어 우파의 지지를 받으며 상대를 압박하는 심 대표야말로 의심스러운 ‘골리앗’이다.

이런 상황은 도대체 심상정 비대위가 조승수 씨 등으로 대표되는 분당파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럽게 한다. “종북파와 평등파의 투쟁은 공유할 수 없는 권력 투쟁”이라고 한 ‘한석호 문건’에서 드러났듯 분당파들은 당권 투쟁에 눈이 어두워져 적과 아를 구분하지 못했다. 또, 조승수 씨는 “이념적·조직적 기초가 다르면 같은 정당에 있을 일이 아니다”고 했다.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말뿐이고 자주파와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힐 각오’?

그래서 창당 때부터 함께해 오던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이들은 갑자기 ‘발견’했다. 당권을 잡지 않은 자주파는 괜찮지만, 당권을 잡은 자주파는 문제라는 말밖에 안 된다. 결국 당권 경쟁을 위해 분란을 촉발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자주파와 평등파 등 다양한 정파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단결을 이루기를 바란 사람들의 염원을 외면한 이들은 근래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거나 양다리를 걸친 채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만들었다.

이들은 심상정 비대위 대표에게 ‘손에 피를 묻힐 각오’로 ‘혁신’하라고 요구했고, 자주파가 다시 당권을 잡지 못하도록 ‘재발방지책’을 만들라고 했는데, 이제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이들의 요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분당파가 자주파와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당을 뛰쳐나갔다면, 심상정 비대위는 당 안에서 자주파의 핵심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려 한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물론 여차하면 당을 쪼갤 생각도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의 문제점은 당을 투쟁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온건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데 있다. 우파 사민주의 노선을 주장해 온 의견그룹인 ‘자율과 연대’가 누구보다 열렬히 ‘혁신안’을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평등파가 자주파보다 상대적 좌파라는 신화를 벗겨낸 점이 그나마 심상정 비대위의 씁쓸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이번 “대선 결과는 분명한 참패”라며 “주체적 요인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압도적인 반노무현 정서와 한나라당의 반사이익, 경제 위기에 따른 경제 성장론의 득세, 북미관계의 일시적 해빙에 따른 반제·평화 이슈의 주변화 등 불리한 객관적 조건에서 벌어졌다. 더구나 각각 여중생 압사 항의 투쟁과 탄핵 반대 투쟁 등에 뒤이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과도 조건이 달랐다. 노무현에서 이탈해 민주노동당으로 오는 표를 문국현이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했다.

이런 객관적 요인을 고려치 않은 일면적인 패배적 평가로부터 당이 더 온건해져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친북정당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을 당에서 쫓아내자고 한다.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없이 북한 국가와의 선긋기만 강조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가난한 독재국가에 반대하는 것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강대국에 반대하는 게 훨씬 중요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말이다.

“운동권 정당”, “가두집회 만능주의” 등도 혁신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대중 투쟁·행동을 중심에 두지 말자는 것이다. 정작 비정규직 악법과 노사관계로드맵 통과 때는 강력한 대중 행동의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부적절한 의회주의적 타협이 문제였는데 말이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당이 문제”였다며 ‘비정규직 당’이 되자고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단결 투쟁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의 투쟁 자제와 양보를 전제로 하는 ‘사회연대전략’을 제안한다. 또,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추구했듯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이런 방향의 “제2 창당”은 결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명박의 사유화·비정규직 확대에 맞서 민주노총이 파업과 투쟁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민주노총당”을 부정해야 하는가? 이랜드노조의 처절한 매출 타격 투쟁, 태안 주민의 분노에 찬 상경 투쟁 등이 벌어지는데 우리는 “데모당”, “운동권당”을 거부해야 하는가?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적으로 인권과 평화를 파괴하는 가장 주요한 원흉인데 이것에 맞서기보다 지리멸렬한 북한 국가와 선긋기에만 몰두해야 하는가? 이래서는 결코 반동적인 이명박에 맞설 “강력한 진보 야당”이 될 수 없다.

심상정 비대위는 더는 당을 분란에 휩싸이게 하거나, 급진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지한 당원들의 분노와 반발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