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는 대선 참패조차 인정하지 않는 '꼴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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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아쉬운 대선 결과에서 주로 비롯한 것이 아닌데도 당의 지도적 인사들은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기의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대선 참패”라는 원안이 아니라 “실망스런 대선 결과”라는 수정안이 통과된 것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자주파의 고집불통의 발로로 규탄한다. 노회찬 의원도 “대선 참패조차 부정하는 당대회에 대해 한탄했다.”
임시당대회에서 문제의 수정안을 발의한 대의원은 자주파 당원이 아니라 바로 우리 다함께 의견그룹 소속 당원이었다. 그의 수정안의 한 항목인 “실망스런 대선 결과”는 다함께의 의견을 요약한 문구인데, 이는 우리도 대선 결과에 실망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참패”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첫째,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해 당의 선거 도전을 지지했던 당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참패”는 자학적인 표현이다.
둘째, 선거와는 구별되는 사회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한 73만 명은 소중한 자산이다. 만약 심·노·김 세 분이 당의 입장만 생각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당원 수의 일곱 배가 넘는 이들을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이들에게 “참패”라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도 섬세하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참패”라는 말을 우리가 거부한 셋째 이유는 그 말이 과장이기 때문, 즉 3백만 표 득표라는 비현실적 기대를 전제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사회 세력관계 냉정하게 보기
2007년 12월 대선 때의 계급 세력 관계는 1997년 권영길 후보가 처음 대선에 참여했을 때, 2002년에 또다시 도전했을 때,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원 10명을 당선시켰을 때와 달랐다. 이 모든 경우에 선거는 수십만 명이 행동한 대중 행동
결국 계급 세력 저울이 노동계급 쪽으로 기울지 않은 것이 “실망스런” 이번 대선 결과의 주된 원인이었다. 물론 계급 세력 관계 변화라는 객관적 요인이 우세했다 해서 주관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즉, 민주노동당 자신의 책임도 없지 않다. 2005년 울산 북구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현대차 노조 위원장 시절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교섭안에 서명한 정갑득 후보를 내세웠다가 노동자들의 심판을 받았는데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친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에서 이런 주관적 요인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은 한미FTA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반전 문제에서도 철군 입장을 고수했고, 그 밖의 다른 문제들에서도 대체로 배신 행위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의 대선 득표 저조의 원인은 주로 객관적 요인에서, 부차적으로 주관적 요인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임시당대회에서 다수 대의원들은 “대선 참패”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를 거부하고 “실망스런 대선 결과”라는 수정안을 지지했다. 1백 퍼센트 지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비대위 평가보다야 낫다고 생각해 지지한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부정적 의미의 친북 정당”에 대한 비대위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던 점도 많이 작용했다. 비록 다수결이 반드시 진리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당의 지도적 인사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일단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소속 정파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분파주의가 몸에 밴 습관일지라도 말이다. 대선 후 한달반이나 된 시점이어서 그 사이에 이러저러한 토론을 많이 경험했을 일선 활동가들의 결정에 대해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분석적 비평도 내놓지 않은 채 간단히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친자본주의 언론에게 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태도이다. 주류 사회와 소통하려 하기 전에 먼저 능동적 당원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2008년 2월 11일
다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