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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는 대선 참패조차 인정하지 않는 ‘꼴통’인가

2008년 2월 11일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아쉬운 대선 결과에서 주로 비롯한 것이 아닌데도 당의 지도적 인사들은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기의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대선 참패”라는 원안이 아니라 “실망스런 대선 결과”라는 수정안이 통과된 것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자주파의 고집불통의 발로로 규탄한다. 노회찬 의원도 “대선 참패조차 부정하는 당대회에 대해 한탄했다.”(중앙일보) 심·노 의원과는 달리 자성하는 정파의 입장을 대변한 말이지만 김창현 전 사무총장도 “‘참패’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고 주체의 문제가 컸다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걸 굳이 뜯어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고 유감을 나타냈다(프레시안). 그의 우려는 “당권파들이 반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시당대회에서 문제의 수정안을 발의한 대의원은 자주파 당원이 아니라 바로 우리 다함께 의견그룹 소속 당원이었다. 그의 수정안의 한 항목인 “실망스런 대선 결과”는 다함께의 의견을 요약한 문구인데, 이는 우리도 대선 결과에 실망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참패”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첫째,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해 당의 선거 도전을 지지했던 당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참패”는 자학적인 표현이다.

둘째, 선거와는 구별되는 사회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한 73만 명은 소중한 자산이다. 만약 심·노·김 세 분이 당의 입장만 생각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당원 수의 일곱 배가 넘는 이들을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이들에게 “참패”라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도 섬세하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참패”라는 말을 우리가 거부한 셋째 이유는 그 말이 과장이기 때문, 즉 3백만 표 득표라는 비현실적 기대를 전제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사회 세력관계 냉정하게 보기

2007년 12월 대선 때의 계급 세력 관계는 1997년 권영길 후보가 처음 대선에 참여했을 때, 2002년에 또다시 도전했을 때,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원 10명을 당선시켰을 때와 달랐다. 이 모든 경우에 선거는 수십만 명이 행동한 대중 행동(각각 노동법 대파업, 여중생 사망 항의 시위, 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의 여파 속에서, 특히 그 운동들이 지배계급의 주요 정당이자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신한국당)에 맞서 일어난 직후에 치러졌다. 이 모든 경우에 수혜자는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이었으나 2004년 총선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도 수혜자였다. 2003~04년 반전 운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운동 고양기에 노무현 정부 1년을 경험하고 그 사이비 개혁성에 분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급진화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50만 명이 2년 뒤 지방선거에서 당 지지층으로부터 이탈했다. 2007년 대선보다 이미 1년반 전 일이었다. 2007년 대선도 2004년 총선에 비해 광범한 대중 투쟁의 후광을 입지 못한, 명백히 진보진영에 불리한 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치러졌다. 그래서 당은 자유주의적 자본가 정당의 배신에 환멸을 느껴 이반한 그 지지자들을 견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표론의 압력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문국현의 존재를 고려해야 한다. 비록 그 온정주의적 자본가가 지금 큰 곤란을 겪고 있다지만, 지난 대선 시기에는 그가 명백히 NGO들의 암묵적·명시적 지지를 받았고, 그 덕분에 겹치는 득표 기반을 놓고 민주노동당과 경쟁하는 입장이었다.(2006년 말부터 다함께는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진보 선거연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러한 연합을 위한 논의 테이블은 너무 늦었고, 너무 미온적이었고, 너무 미약했다. 하지만 이 얘기를 더 하면 죽은 자식 나이 세기 같은 꼴이리라.)

결국 계급 세력 저울이 노동계급 쪽으로 기울지 않은 것이 “실망스런” 이번 대선 결과의 주된 원인이었다. 물론 계급 세력 관계 변화라는 객관적 요인이 우세했다 해서 주관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즉, 민주노동당 자신의 책임도 없지 않다. 2005년 울산 북구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현대차 노조 위원장 시절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교섭안에 서명한 정갑득 후보를 내세웠다가 노동자들의 심판을 받았는데(2007년 대선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이 지역에서 16.6퍼센트만을 얻었다), 이후 국회에서 비정규직 악법과 노사관계로드맵 처리 과정에서의 우유부단한 대처로 당의 인기는 더 떨어졌을 것이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진지한 연대를 방기하거나 심지어 배신한 특정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민주노동당이 비판하지 않는 것도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당이 인기 없는 원인이 됐을 것이다.(이 모든 점들을 고려한다면, 민주노총 중앙파 지도자인 심상정 의원이 당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인기 없는 “민주노총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친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에서 이런 주관적 요인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은 한미FTA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반전 문제에서도 철군 입장을 고수했고, 그 밖의 다른 문제들에서도 대체로 배신 행위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의 대선 득표 저조의 원인은 주로 객관적 요인에서, 부차적으로 주관적 요인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임시당대회에서 다수 대의원들은 “대선 참패”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를 거부하고 “실망스런 대선 결과”라는 수정안을 지지했다. 1백 퍼센트 지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비대위 평가보다야 낫다고 생각해 지지한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부정적 의미의 친북 정당”에 대한 비대위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던 점도 많이 작용했다. 비록 다수결이 반드시 진리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당의 지도적 인사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일단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소속 정파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분파주의가 몸에 밴 습관일지라도 말이다. 대선 후 한달반이나 된 시점이어서 그 사이에 이러저러한 토론을 많이 경험했을 일선 활동가들의 결정에 대해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분석적 비평도 내놓지 않은 채 간단히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친자본주의 언론에게 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태도이다. 주류 사회와 소통하려 하기 전에 먼저 능동적 당원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2008년 2월 11일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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