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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명부 비례후보 선출 투표에 대한 다함께의 입장

2008년 3월 9일

우리는 지난 3월 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민주노동당 혁신 비대위가 내놓은 비례후보 전략명부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중대 결심을 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자본가들의 정치인을 지지했던 인물들이 아무 해명과 검증 과정 없이 공천된 점,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 노동단체 투사가 공천에서 배제된 점, 패권주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주파가 다수인 점 등을 지적했다.

전략명부 발표 후 여기저기서 이와 비슷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혁신비대위는 당내 좌파들이 전략공천 명단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랜드노조가 배제되고 두 달 전만 해도 정동영을 지지했던 사람이 1순위에 놓인 명단의 근본적 성격을 오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문제가 심각한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포함해 새로운 명부를 제시해 줄 것을 혁신 비대위에 기대했다. 그러나 혁신 비대위는 “지적되는 경력은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전략명부를 고수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혁신 비대위의 위신과 권위 실추를 무릅쓰고 전략명부 1번에 대한 반대를 당원들에게 호소하고, 혁신 비대위 프로젝트의 성격을 들춰내고 끝까지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 내용과 방향을 받아 안겠다”던 혁신 비대위의 전략명부가 우경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혁신 비대위의 이수호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은 심상정 비대위가 추진하다가 대의원들의 반대로 실패한 민주노동당 우경화 계획을 계승하고 강행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그는 <레디앙> 인터뷰에서 “심상정 의원의 혁신안은 굉장히 내용이 풍부하고 혁신적[이었다]”고 말했다. ‘일심회’ 구속 당원에 대해서도 “당기위[에서] … 아주 엄격하게 처리할 작정”이라고 했다. 심지어 “총선이 끝나면 당명[과 강령] 개정까지도 열어놓고 재창당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랜드 노조 문제

이번 전략공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직 차별에 맞선 투쟁의 상징인 이랜드노조가 추천한 후보를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다.

미리 밝혀 두자면, 우리는 이랜드노조의 후보가 배제됐다 해서 그 대신 비정규직 비례후보로 선정된 홍희덕 후보를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홍희덕 후보와 민주연합노조가 ‘노사화합선언’을 했다는 의혹이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해명이 있었다. 오히려 홍희덕 후보는 천대받는 환경미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온 투사로 알려져 있다. 탄압을 무릅쓰고 온갖 투쟁과 연대에 앞장서 온 홍희덕 후보의 전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시 이랜드노조 문제로 돌아오면, 이랜드 투쟁은 단지 한 노동계급 부문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비정규직 투쟁의 대명사로서 그것은 정치적 상징이다. 박성수를 그 밖의 다른 대자본가들이 강력히 후원한, 자본가 계급 전체의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그랬고, 또 이랜드 노동자들이 손에 잡히는 성과를 얻기를 노동계급 전체가 염원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혁신 비대위는 이랜드노조 이남신 부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이남신 동지가 “집행유예로 고법 계류 중”이며 “비정규직 당사자가 아니”고 “출마를 결정할 이랜드 총회 날짜와 전략공천 마감 기간이 불일치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설득력이 없다. 이런 이유라면 똑같은 조건인 김경욱 이랜드노조 위원장을 공천하려 한 것은 설명할 수 없으며, 공천할 의지가 있었다면 날짜를 조정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혁신 비대위가 이미 다른 후보를 내정해 놓고 요식절차로 이랜드노조 후보에 대한 공천 심사를 했다는 여러 구체적 증언들이 있다.

결국 이랜드노조가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총선 출마를 고려하게 된 것에는 혁신 비대위의 잘못이 (전적이지는 않을지라도)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일부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진보신당으로 출마하면 [이랜드 투쟁에] 연대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이랜드노조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식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랜드 투쟁은 정파적 입장 차이와 무관하게 연대하고 승리해야 할 투쟁이다.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과의 차별성 문제 1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진정한 혁신 과제가 이명박에 맞서 노무현 아류와 차별성 있는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 비대위의 전략명부가 이 진정한 혁신 과제와 어긋난다는 점을 가장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전략명부 1번인 곽정숙 후보이다. 곽정숙 후보는 현재 국회 진출 가능성이 가장 큰 비례후보 1번이다.

곽정숙 후보가 장애인 인권 운동에 헌신해 온 것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기여한 바는 존중한다. 장애인 해방을 위한 투쟁도 변혁 운동의 과제다. 
   
그러나 곽정숙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참여정부의 황태자”인 정동영을 지지했다. 이라크 파병, 한미FTA 추진, 비정규직 양산과 탄압 등 노무현의 온갖 배신과 개악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계승자를 지지한 것이다.

물론 노무현 지지자였던 사람이 좌경화해서 노무현을 비판하고 노무현의 개악에 맞선 투쟁에 민주노동당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외연 확대”일 것이다. 예컨대 지금은 진보신당으로 간 정태인 씨가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곽정숙 후보는 이런 해명과 검증 과정이 없었다.

지금도 곽정숙 후보는 “한나라당을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민주노동당과 정동영의 장애인 정책에 큰 차이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의 요청이 있었으면 오히려 이쪽으로 [지지]했을 것[이다]”(<민중의 소리>) 하고 지극히 무원칙한 태도만 드러내고 있다. 

곽정숙 후보의 무원칙한 실용주의적 입장은, 그가 국회에 들어가서 이명박에 맞선다는 명분 하에 노무현 아류와 의회 내 개혁공조식 활동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새 동맹자의 정치적 전력을 문제 삼는 것은 흔히 종파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주류 정치에 대한 낡은 충성과 단절했을 때 얘기다. 특히 진보 정당은 출세주의와 그것을 위한 배신을 경계해야 하므로 결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포르투갈의 진보 정당인 좌파블록은 자신들과 동맹한 무소속 후보가 당선하고는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세우는 바람에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다.

곽정숙 후보 문제는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부문할당에 대한 재검토 필요도 제기하고 있다. 부문할당 비례대표는 주류 정당의 직능별 비례대표와 비슷하다. 지역구에서 자본가들의 ‘계급’ 대표들을 충분히 당선시키는 주류 정당들은 직능별 비례대표를 득표와 지지 기반 확대에 이용한다. 그러나 비례후보로 이제야 국회 진출을 시작한 노동자 정당에게는 부문할당보다 노동자․민중 투쟁의 대표자, 반신자유주의․반전 운동의 대표자들을 선정하는 것이 더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부문할당제는 정체성 정치를 반영하는 제도로, 정체성 정치는 계급의 차이를 희석시킨다. 자본가 계급의 여성이든 노동계급의 여성이든 성 정체성으로 단결할 수 있고, 장애인은 계급과 무관하게 장애 문제 하나로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아류 정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도 흐려지고 곽정숙 후보 같은 착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과의 차별성 문제 2

비례후보 3번 이정희 후보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찬성할 수도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 후보는 민주화와 사법개혁에 앞장서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이다. 그는 ‘이라크파병결정 헌법소원청구 및 가처분신청’을 한 바 있고, 불평등한 SOFA와 주한미군 범죄에 반대해 왔고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도 동참했다. 평화 사진작가 이시우 씨를 변호하는 등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도 함께해 왔다. 보안법의 제물을 변호하면 그것이 바로 그 피해자와 사상을 공유함을 뜻한다는 식으로 우익에 의해 매도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정희 변호사의 용기는 찬양 고무돼야 한다.

그러나 법조인이라는 한솥밥 먹는 식구라는 압력 때문인지 몰라도 이정희 변호사는 2006년 지방선거 때 열우당 후보인 강금실을 지지했다. 이정희 후보는 강금실이 “그 당시에는 가장 개혁적인 여성 법조인이었다. 그래서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금실은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이었다. 노무현은 취임 초부터 이라크 파병을 했다. 강금실이 법무장관이던 1년 5개월 동안 수백 명의 노동자․학생들이 노동악법과 국가보안법 등으로 구속됐다. 화물연대 파업과 철도 파업에 경찰력이 투입된 것도 이 때였다. 특히, 강금실 법무부의 살인적 단속 추방 속에 십수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죽어갔다.

무엇보다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 노무현 정부는 평택에 1만 3천 명의 경찰과 군 병력을 투입해 미군기지 반대 시위대를 짓밟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후보인 강금실을 지지했던 것은 지금 신자유주의와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소원케 하는 일이다. 반전·반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의 염원과 전략적 과제라는 점에서 공인된 진보의 기준이다. 노무현과 열우당의 배신을 겪고도 정동영과 강금실을 지지한 것이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일 수는 없다.

물론 자유주의적 자본가들의 정치인을 언제든 지지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1987년이나 1992년 대선의 경우엔 김대중에게 비판적 투표를 할 수 있었고, 사실 그래야 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시에 비판적 지지를 주장한 운동 세력이 실제로는 무비판적 지지를 했다는 점일 것이다. 1997년 대선의 경우에는 비판적 투표가 적절한 정책이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백보 양보해 그때조차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투표 전술이 조금은 일리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과 열우당의 배신이 대중적으로 입증된 2006년 지방선거에서 강금실을 지지한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증오가 이명박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두루 지적되던 지난 연말 대선에서 정동영을 지지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본인들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곽정숙 후보와 이정희 후보는 그때 비판적 지지를 했던 것도 아니다.

곽정숙 후보가 전략명부 1순위에 배치됨으로써, 자유주의 정치 세력들에 실망해 이반한 광범한 대중의 눈에 민주노동당이 민주당 2중대처럼 비쳐질 위험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실망스런 결과”가 나온 주관적 요인은 주로 당이 국회에 들어가서 열린우리당과 “개혁 공조”를 한 일이다. 2004년 총선에서 2006년 지방선거까지 2년 간 민주노동당 지지자 중 약 50만 명이 이탈했는데, 대부분 이들은 노무현에게 환멸을 느끼며 사회 변화와 진보 정당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접은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노무현에게서 이반할 때 우리 당은 노무현을 (비판적으로) 지지해 줬던 것이다. 그런 과오를 혁신 비대위는 되풀이하려 하는가?

“사람들은 버터 맛 나는 마가린보다 버터를 선호한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외연을 확대한답시고 정동영·강금실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끌어들이려 애쓴다면 그것은 오히려 민주당을 부활시키는 데만 일조할 것이다.

또, 이솝 우화에는 주인의 뺨을 핥고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강아지가 부러워 그 흉내를 고스란히 내다가 오히려 주인한테 흠씬 두들겨맞는 당나귀 얘기도 나온다. 민주노동당이 되도 않게 민주당 흉내를 내려다가는 자신의 진정한 지지자들로부터 이런 징벌을 다시 받을 수 있음을 되새겨봐야 한다.

호소

지금까지 설명한 주장들에 근거해 우리는 당원들에게 1번 곽정숙 후보에 대해 반대 투표할 것을 호소한다. 우리가 곽정숙 후보를 반대한다고 해서 마치 우리가 장애인을 반대하는 것인 양 음해하려는 기도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음해와 중상모략들은 진정한 쟁점을 회피하기를 원하는 자들의 소행일 것이다.

3번 이정희 후보에게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는 특히 보안법 반대와 한국군 철군 문제에서 훌륭한 입장이지만, 그가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인 강금실을 분명히 비판하지 않는 한은 국회에 보낼 수 없다.

나머지 후보들은 민주노동당의 비례후보로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례후보 4번인 지금종 후보는 대선 때 문국현을 지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고 우리는 본인의 주장을 수용한다. 하지만 그가 정파 단속 제도인 심상정 혁신안의 정파등록제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한 것을 우리는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진보신당과 동반 우경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이명박의 반동과 개악에 맞설 강력하고 좌파적인 야당이 되도록 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이 투쟁에 당원 여러분이 함께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호소드린다.

2008년 3월 9일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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