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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전직 대통령까지 죽게 한 이명박의 가증스런 역주행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 압박에 내몰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7월 국가기록 유출 혐의를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정 부패 혐의를 들춰내려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심지어 자기네 편 일부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격은 분명히 단순한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 공세 이상이었다. 이명박은 노무현을 공격해 지난해 촛불항쟁의 일부였던 노무현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운동을 탄압하고자 했다. 제2의 촛불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공격은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촛불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 줬다.

물론 집권 시절 임금 몇 만 원을 더 받으려고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노동 귀족’ 운운한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기업주에게서 수십억 원을 받은 것을 ‘얼마 안 되는 것’이라며 옹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미 집권 전부터 수많은 비리에 연루된 이명박 정부와 부패 원조 한나라당,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도 ‘인사를 새로 해야 할 정도로’ 부패에 연루된 검찰에게 노무현을 단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도 멀쩡히 살아 있는데’라는 말도 공감가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탄압, 노동자들에 대한 고통전가 등 그칠 줄 모르는 개악 추진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인 상황에서, 이런 위선적 공격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자, 그것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부글 부글 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명박의 시도는 애초 목적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오히려 냉혹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한층 더 싸늘해졌을 뿐이다.

수십만 명이 봉하마을과 덕수궁 앞에서 노무현을 추모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현 정부 인사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단은 추모객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며 조문을 시도했지만 결국 돌아서야 했다. 국회의장 김형오는 물벼락을 맞고 쫓겨났고 이회창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달걀과 물병 세례만 받고 쫓겨났다. 박근혜도 거센 항의를 받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고 이명박이 보낸 조화는 진작에 박살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이 봉하마을에 찾아가면 ‘제2의 정원식 사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이명박은 혹여 노무현 추모가 거리 시위로 발전할까 봐 두려워 분향소를 차벽으로 둘러싸고 통제하고 있다. 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 놓인 명박산성은 앞으로도 더 높아질 듯하다.

명박산성

젊은 날의 노무현은 분명 개혁의 상징이었다. 1987년 당시 그는 운동의 일부였고,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지지를 보냈다. 전두환·노태우 청문회 당시 그가 보여 준 행동은 평범한 노동자 서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혁을 염원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7년 전 그를 부패한 한나라당에 맞설, 낡은 민주당과도 구분되는 선택지로 봤다. 그런 환상과 기대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노무현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을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손호철 교수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 진보 진영의 상당수 단체들과 개인들이 이런 정서에 공감을 표하는 데서 더 나아가 노무현이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한 ‘매력적인’ ‘훌륭한’ 정치인이었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이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서 일관됐고 무자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서민의 삶을 파괴했다. 정해진, 하중근, 전용철, 김동윤, 김태환,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박동준 씨가 노무현 정부의 친기업·반노동 정책에 항의하다 목숨을 잃었다. 허세욱 열사도 한미FTA 체결과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단지 ‘전략 부재’나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미국에도 할 말은 하겠다’던 말과 달리 노무현 정부는 부시의 파병에 동참했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파병 때문에 김선일, 윤장호, 배형규, 심성민 씨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부시의 대북 압박 정책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도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지배계급 내 주류에게서 그토록 멸시당하고 결국 탄핵까지 당했지만 탄핵에서 구출된 뒤에도 그는 자신을 구출해 준 사람들보다 기업주·부자 등 이 사회의 기득권 층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진보개혁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외면한 노무현 정부의 이런 행보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 환멸이 이명박 당선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다.

부메랑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친제국주의 정책을 더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말로나마 대화와 토론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말보다 방패와 몽둥이가 앞서는 정부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정적마저 사지로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의 매정함과 야비함이 우리 노동자·서민을 상대할 때는 어떨지 말해 뭐하겠는가.

이미 박종태 열사가 죽었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내몰리고 있으며 수많은 노동자·서민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그칠 줄을 모르자 이명박은 지배계급 내 비주류를 공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 듯하다. 그러나 촛불 이후 이명박의 시도가 번번히 좌절됐듯이 이번에도 노무현에 대한 집요한 공격은 오히려 부메랑이 돼 이명박에게 돌아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는 더 커진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반민주적 탄압에 맞선 투쟁은 한 치도 흔들림없이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