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아쉽지만 선방한 77일간의 영웅적 파업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을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킨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이 8월 6일 아쉬운 절반의 성과로 마무리됐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와 투지를 불태우며 우리를 놀라게 하고 지배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거센 투쟁의 불길은 77일 만에 사그러들었다. 77일 만에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은 대부분 투지와 기세를 꺾지 않고 있고 최선을 다했다는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이 불길을 끄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천인공노할 야만적 탄압과 살인 진압까지 불사했다. 이윤 앞에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명을 거리낌 없이 내팽개치는 체제와 지배자들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왜 쌍용차는 구조조정의 시범 케이스가 됐는가
쌍용차는 올해 초 법정관리 상태가 되면서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임금 삭감과 체불, 복지 축소 속에 쌍용차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노조의 조사에서 조합원의 87퍼센트가 빚을 지고 매달 평균 71만 원을 원금과 이자로 갚고 있다고 답할 정도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쌍용차 위기에 아무 책임이 없었다. 위기의 책임은 2004년에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정부와 쌍용차 인수 후 기술 유출만 한 ‘먹튀 자본’ 상하이차에 있었다.
여기에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속에 세계적 자동차 시장의 과잉생산 문제가 악화하면서 쌍용차는 사실상 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그런데 이 같은 위기의 주범인 정부와 사측은 나아가 쌍용차 생산직 노동자 2명중 1명인 2천6백46명을 해고하려 했다. 사측은 이것을 “좋은 회사로 가기 위한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다. 대량 해고를 통해 쌍용차를 투기자본과 재벌들이 집어먹기 “좋은 회사”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세계경제 위기 속에 한국 자동차 산업을 구조조정하려는 정부 계획의 일부였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약 3천만 대가 과잉생산 상태였고 이 때문에 GM, 크라이슬러 등이 무너지고 인수 합병이 벌어지면서 치열한 경쟁과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피아트의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향후 세계 자동차업계는 연간 55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빅6’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속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세계적 과잉생산 속에 내수와 수출이 줄면서 위기를 겪고 있지만 GM 등이 몰락한 자리를 차지하며 ‘빅6’로 올라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5개인 자동차 업체를 3개 안팎으로 합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지식경제부 내부 문건이 올해 초 언론에 유출된 바 있고 도요타 등을 따라잡으려면 노동자를 더욱 쥐어짜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 언론에서 거듭 제기됐다.
지배자들은 이런 강력한 구조조정에 최대 걸림돌이 무엇보다 ‘강성노조’라고 본다.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더 강화하려면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해야 하고 이를 가로막는 ‘강성 노조’를 다스려야 한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를 표적으로 삼았다. 쌍용차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쌍용차 노조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일 뿐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노사협조적 우파 지도부가 이끌어 온 상대적 약체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쌍용차와 노조를 ‘노동유연화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 노중기 교수의 지적처럼 “쌍용차를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의 선례를 남겨 현대차 등 강성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게 진짜 목표”였던 것이다. 쌍용차노조를 파괴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퍼센트 이상이며 민주노총의 오른팔ㆍ왼팔이라는 현대ㆍ기아차 노조를 공격하는 디딤돌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위원도 “작은 놈을 확실히 제압해 덩치 큰 놈에게 ‘위협 효과’로 사용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명박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대량해고, 노조 파괴의 물결을 쌍용차에서부터 막아야 했다.
고통전가를 위한 지배자들의 전략
이명박 정부의 대리인이었을 뿐인 쌍용차 법정관리인들은 애초에 이런 정부의 계획과 목적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쌍용차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4월 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고 5월 중순에 배포한 사측 유인물도 “냉혹한 현실 앞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원칙대로 밀고 나간다”고 했다. 이유일은 6월 15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한국에서 구조조정 못한다. 다른 완성차의 구조조정에도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량해고를 관철시키기 위해 저들은 몇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저들은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청산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협박해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려 했다. 연관업체와 금융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관련업체까지 최대 20만여 명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청산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청산보다 회생 가치가 3천억 원이나 더 많다고 회계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청산은 채권단과 협력업체 기업주들에게 손해일 가능성이 컸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도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쌍용차를 본보기로 선택했을 수 있지만 본보기치고는 그 후유증이 너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는 막바지에 “쌍용자동차를 공중 분해시키고 협력업체 직원 등 20여만 명의 일자리를 날려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강성 노조를 길들이고 정리해고를 강제”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냈다.
둘째, 저들은 끝없이 노동자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치기 하며 이간질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희망퇴직 신청자와 비신청자를, 해고 대상자와 비대상자를 이간질해 노동자들의 단결과 힘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처음에 저들은 비정규직부터 대량 계약해지했다. 이어서 정규직을 상대로 ‘어차피 당신은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돼 있으니 빨리 희망퇴직하라’는 대대적인 협박과 강요를 했다. 있지도 않은 명단에 속아 불안에 떨며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이 1천여 명이 넘었다.
이에 맞서 노조가 점거 파업에 돌입하자 곧 해고자 명단을 확정해서 발표하고 발송하기 시작했다.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리해고 명단이 통보되면 노조가 두 분파(남은 자와 떠날 사람)로 나뉠 것”이라며 의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강제 출근시켜 구사대 노릇을 강요했다. ‘산 자’에게 쇠파이프를 쥐어 주고 ‘죽은 자’의 뒤통수를 치라고 강요했다. 서로 마주 노려보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가슴에 피눈물이 흘렀다.
파업 철회 촉구 집회에 강제 동원됐던 한 ‘산 자’가 “동료 보기 미안하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8월 5일 살인 진압 과정에서 추락해 허리가 부러진 ‘죽은 자’ 형을 보기 위해 달려 온 ‘산 자’ 동생이 팔에 두른 ‘정상 조업’ 완장은 저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을 생생히 드러냈다.
셋째, 이명박 정부와 사측은 무자비한 폭력과 물리력으로 쌍용차 평택공장을 전쟁터ㆍ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사측은 노조의 파업에 대비해 미리 28억 원을 주고 용역깡패 제공 업체와 계약을 해 두었다. 용역깡패들은 뼈를 부러뜨리는 파괴력을 가진 특수 주문제작한 대형 새총을 노동자들에게 쏘아댔다. 정부는 4천여 명의 경찰 특공대와 전투경찰을 동원해 평택공장을 에워쌌다. 온갖 중장비가 동원됐고 경찰 헬기는 노동자들의 살갗이 벗겨지게 하는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비처럼 쏟아 부었다. 경찰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테이저건과 나무방패를 뚫는 폭동진압용 다목적발사기까지 노동자들에게 발사했다.
음식물, 의약품 반입을 차단하고 물과 가스까지 끊는 살인적 고사 작전도 추진했다. 잠도 못 자게 하루 종일 음악과 선무방송을 틀어댔다. 정리해고와 구사대 동원 등이 낳은 압박으로 뇌출혈, 심근경색, 자살, 유산 등으로 6명이 죽은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 배가”를 추진한 것이다.
8월 4~5일의 살인 진압에서 노동자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 저들의 야만적 폭력은 절정에 달했다.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이 30만 리터의 신나와 페인트가 가득한 그야말로 ‘화약고’라서 진압 과정의 실수로 폭발이 일어나면 인명 몰살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한데도 저들은 살인 진압을 강행하려 했다. 그 와중에 노동자 2명이 추락하고 화재가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들은 모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와 그 지배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영웅적 점거 파업
쌍용차 점거 파업이 보여 준 것은 단지 지배자들의 야만과 폭력만이 아니다. 77일간의 파업은 이런 야만과 폭력에 맞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빛나는 의지로 눈부셨다.
제대로 물과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씻지도 못하며 경찰과 용역 들의 온갖 살상무기에 다치고 최루액과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도 노동자들의 불타는 태양 같은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전쟁터ㆍ생지옥 속에서 막바지까지 4백50명이나 버틴 건 진정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실로 영웅적인 투쟁이었고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멋지게 보여 준 인간 의지의 승리였다.
쌍용차 점거 파업은 화물연대의 박종태 열사 투쟁과 더불어 상반기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구실을 했다. 5월말에 <연합뉴스>는 “올해[하투]는 산하조직이 앞장서고 총연맹이 뒤따르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것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내몰리던 이명박에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나아가 쌍용차노조는 서울 시청광장에 10만 명이 결집한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자신들의 투쟁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 수호를 위한 투쟁과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의 결합을 시도한 이 모범적 시도는 두 투쟁 모두를 고무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투쟁이 정치 투쟁과 결합할 필요성을 보여 준 것이다.
쌍용차 파업은 단호한 점거 파업이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지지와 연대를 넓히는 방법이라는 것도 보여 줬다. 지지 방문과 진보정당과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가 이어졌다. 미국, 영국, 홍콩, 브라질, 남아공, 터키 등에서도 국제 연대 메시지와 행동이 이어졌다. 여론의 압력에 국가인권위도 긴급 구제 신청을 했고, 2004년에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장본인인 민주당조차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가족대책위 여성들의 헌신적이고 끈질긴 투쟁과 호소도 이 과정에서 혁혁한 구실을 했다.
6월 중순 한길리서치 여론 조사에서는 63퍼센트가 쌍용차 정리해고에 반대했고 79퍼센트가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곳곳에서 임금 삭감과 해고가 벌어지는 경제 위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승리를 응원했다.
쌍용차 파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굴뚝에 올라가고 파업을 함께하는 아름다운 투쟁이기도 했다. “농성장 안에는 정규직ㆍ비정규직 구분이 없다”, “함께 파업 하면서 나도 같은 노동자라는 존재감을 느낀다. 먹을거리 하나라도 비정규직을 먼저 챙겨준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언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백기투항을 원한다면 8백50개 관을 준비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투지와 기세는 지배자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파업 침탈을 시도하던 경찰과 용역깡패, 구사대들이 노동자들의 기세에 밀려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는 일이 거듭 벌어졌고 법정관리인 박영태는 “힘도 안 되고, 공권력도 안 되고 … 우리 [용역과 구사대] 2천 명이 민노총 등 30명의 조직적 싸움을 못 당해내더라”(<한겨레> 6월 10일치)며 혀를 찼다.
<조선일보> 경제부장 윤영신은 “이명박 정부는 평택을 ‘해방구’로 만든 쌍용차 노조의 불법에 무기력한 모습”이라며 “엠비노믹스는 이제 형체를 찾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쌍용도 해결 못하면서 무슨 투자를 하라고 하냐’는 기업주와 보수 언론 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전경련 회장 조석래는 “강성 노조만이 나라의 주인인 양 판을 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온갖 협박과 폭력으로도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지를 꺾을 수 없었던 정부와 사측은 거듭 조금씩 물러서야 했다. 노조가 입수한 사측 임원의 수첩에 적혀 있었던 “타협 X. My Way”라는 저들의 기조는 지켜질 수 없었다. 2천6백46명 중 희망퇴직자 등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6월 8일 정리해고를 통보한 9백76명을 반드시 해고하려던 저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저들은 6월 26일 이중 1백50명을 무급휴직으로 구제해 고용을 유지한다는 ‘최종안’을 던졌다. 8월초에는 다시 3백90명을 무급휴직으로 구제한다는 소위 6:4 ‘최종안’을 던졌다. 다시 며칠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최종적으로 52:48로 4백∼5백여 명을 구제한다는 안이 타결됐다. 사실상 최종 순간까지 점거를 유지한 노동자들의 수와 비슷한 규모가 구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희망퇴직금을 거의 두 배로 늘린 것, 복지 삭감 중에서 학비 지원을 지켜낸 것, 비정규직 고용 승계를 약속받은 것 등도 초인적인 투쟁이 낳은 성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파업 노동자들의 기세와 투지가 꺾이지 않았다. 77일 동안 전쟁터ㆍ생지옥을 함께 견뎌 낸 투사들은 이미 어제의 그들이 아닐뿐 아니라 이들의 동지애와 결속력도 막강해졌다.
따라서 쌍용차노조가 “백기투항했다”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민주노총 국민파에 친화적인 중앙대 이병훈 교수도 “[이런] 합의안을 받기 위해 노조가 70여일간 그렇게 소모적인 투쟁을 해야 했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평가는 ‘그토록 강력하게 투쟁해도 얻은 게 별로 없다’는 냉소를 부추길 수 있다. 그 점에서 “[노조가] 일정 수준의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여야 했다”는 식의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주장도 완전히 틀린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 개혁 언론들은 조중동처럼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진 않았지만 유감스럽고 얄미운 양비론과 양보론을 펴며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77일간의 투쟁이 없었다면 대량 해고를 절반이나마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고 노조를 지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도 “사측은 당초 9백74명 전원을 정리해고할 방침이었지만 점거농성에 부딪혀 절반 가까이 고용관계를 유지, 경영정상화에 부담을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사측이] 구조조정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노조에 지나치게 양보”했고 “국내 최고 수준의 투쟁력을 입증한 ‘강성 노조’를 계속 끌고갈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경제 위기 시대에 강력하고 끈질긴 투쟁만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물론 최종 타결 내용은 77일간의 결사항전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썩 내키지 않을 내용이다. 파업을 지도한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도 “목숨을 걸고 투쟁했지만, 힘이 부족해 정리해고를 끝장내지 못했습니다. …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아쉬운 절반의 선방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의지와 투쟁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연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연대 투쟁의 부족으로 절반만 거둔 성과
앞서 지적했듯이 쌍용차는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미미하다. 그래서 파업이 미치는 경제적ㆍ정치적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쌍용차나 협력업체는 파업의 타격을 받았지만 자동차 산업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ㆍ기아차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파업의 타격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저들은 심지어 ‘어느 사기업이 이런 잉여인력과 강성 노조를 가진 기업을 인수하겠냐’며 청산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맞서 파산 기업의 공기업화를 통한 일자리 보장이라는 요구가 필요했다. 쌍용차를 망친 자들은 어디가고 왜 국민 세금을 써야 하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는 공적자금 투입은 이후 재매각이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공기업화해서 국가가 책임지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연관업체 20만여 명의 고용도 안정시키라는 요구가 필요했다.
따라서 모든 점거 파업에서 연대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쌍용차에서는 특히나 더 필요하고 중요한 상황이었다. 단호한 점거 파업과 강력한 연대 투쟁ㆍ파업을 결합시켜서 이런 요구를 저들에게 강제해야 했다. 만약 현대ㆍ기아차 등 다른 부문에서 연대 투쟁과 파업이 벌어져 산업과 수출에 큰 타격을 가하고 파업 노동자들에게 힘을 줬다면 정부도 더 큰 양보를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지적처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현대ㆍ기아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만약 라인 가동을 멈추었다면 지배자들은 ‘살인 진압’ 벌이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도부는 이런 투쟁을 지도하는 구실을 하지 않았다. 경제 위기 시대에 우리의 일자리와 삶을 지킬 수 있는 투쟁의 지도부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점만 드러냈다.
물론 일부 연대 집회 등을 조직하고 연대 파업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들 지도자들은 실질적인 연대 투쟁과 파업 건설보다는 중재자 구실에 더 치중했다. 이들은 대량해고에 맞선 투쟁과 연대 건설보다는 적절한 양보를 통한 타협을 추구했다. 협상 전문가라는 사회적 위치 때문에 아래로부터 투쟁보다 협상과 노조 조직 기구의 보존을 중시하는 노동조합 관료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금속노조 지도부는 쌍용차지부에게 양보안 제시를 권고하기도 했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중재를 하는 데 바빴다.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지식경제부, 노동부, 산업은행, 국회의원, 평택시장, 관리인 등 다 만나보고 쑤셔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물밑협상이 뭔가 성과를 내올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도 “공장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중재자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상황은 상층 간부들의 협상에 의존하는 산별노조가 아니라 기층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에 의존하는 산별노조가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물과 식량 전달이 가능할 만한 수만 명 규모의 연대 집회가 아닌 기껏 수 백~수 천 명이 모인 연대 집회를 조직하고는 그나마 김빠지는 연설을 해서 참가자들을 힘 빠지게 했다. 협상이 벌어질 때는 협상만 쳐다보며 시간만 보내다가 협상 결렬 후 곧장 이어진 살인 진압에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쌍용차에서 대량 해고가 성공하면 현대 기아 GM대우 등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자동차 3사 노조 지도부도 ‘살인 해고’를 막는 데 진지하지 않았다. 현대차 윤해모 지도부는 투쟁을 회피하려고 무책임하게 사퇴해 버렸고, 기아차 지도부는 기아차 파업과 쌍용차 파업을 연결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다. 기아차 김종석 지부장은 올해 초 모터쇼장에서 “쏘렌토가 잘 팔려야 회사와 노조도 잘 됩니다. … 적기 생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하기도 했다. GM대우차 지도부는 임금 동결로 임단협을 조기 타결해 버렸다.
이들 지도자들은 ‘기층의 동력이 부족했고 호소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쌍용차 파업은 명백히 여론의 큰 지지를 받았고 현장 노동자들도 당연히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현대차 등의 현장에서 의미있는 수의 지지 서명과 모금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가능성을 확대하고 발전시키지 않은 지도부에 있었다. 금속노조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에서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연대 파업 계획을 통과시키려 노력과 호소를 하지 않았다. 지부 지도부는 지부 사정을 핑계로 산별노조의 지침을 거부하려 했고 그런 지부를 핑계로 산별노조 지도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했다.
심지어 8월초 살인 진압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자들은 하루 파업조차 선언하려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연대 투쟁의 부족함 덕분에 정부는 감히 몇 차례나 살인 진압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택공장 앞에서 용역과 구사대에 굴욕적인 폭행을 당하며 제2의 용산참사가 벌어지면 어쩌나 하며 마음 졸이던 많은 사람들에게 주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연대 투쟁 건설 방기는 환멸을 넘어 범죄적 배신 행위로 보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파업에도 불구하고 대량 해고를 절반밖에 막지 못한 것의 책임과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망과 과제
노동유연성이 “국정 최대 과제”라는 이명박은 하반기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위한 노동법 개악과 주요 대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쌍용차 정리해고를 포기할 수 없었다.
쌍용차의 투사들은 비록 절반의 성과이긴 하지만 영웅적인 투쟁으로 이런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보복과 뒤통수 치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청산을 불사해서라도 이번 절반의 성과마저 의미 없게 만들려 할지 모른다. <조선일보>도 “쌍용차를 이 지경으로 몰아간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그 책임을 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철저한 보복을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만일 법원과 채권단이 청산을 결정하면 … 신속히 청산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쌍용차의 투사들은 즉각 자신들의 결속력을 이용해 비대위 등을 구성해 다가 올 노조 무력화 보복과 9월 노동조합 선거에서 우파 지도부 건설 시도, 재매각과 구조조정 시도 등에 조직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쌍용차 투쟁을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번 투쟁에서 쓰디 쓴 교훈을 배우며 다음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이명박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 인기에 연연해하지 말라”며 구조조정과 고통전가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저들은 이번에 가공할 무력을 통해 가까스로 대량 감원을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고통전가에 맞선 결코 만만치 않은 저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전경련은 8월 3일 발표한 ‘쌍용차 사태로 본 노사관계 현실과 과제’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에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경제>는 “언제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쌍용차 파업에 대한 야만적인 고사 작전과 살인 진압 시도는 이명박과 노동자ㆍ서민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피와 눈물의 강물을 더 깊게 하며 반이명박 정서와 증오심을 더 심화시켰다.
다음의 ‘유사한 사례’ 때는 단호한 점거 파업에 반드시 강력한 연대 투쟁과 파업을 결합시켜야 한다. 그 점에서 연대 투쟁과 파업을 건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기보다 “해고를 한다면 어떤 절차와 기준에 따라 하고 어떤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노동계 내부의 가이드라인을 진작 만들었어야 했다”는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위원의 평가는 유감스럽다. 이런 수세적이고 협상 중시적 태도가 사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무기력하고 한심한 처지를 낳은 것이다.
물론 현재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현장 조합원들이 이런 지도부를 뛰어넘는 높은 자신감과 투지, 정치 의식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쌍용차 파업에 연대해야 한다는 여론과 움직임은 존재했지만 상층 지도부의 제한적 태도를 넘어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경제 위기에 다소 위축돼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아직 부문의 벽을 넘은 연대나 정치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연대 투쟁을 추동할 현장 활동가들의 규모와 자신감, 조직적 결속력도 높지 않은 듯 하다.
지난해 촛불항쟁이라는 절호의 기회에 파업에 나서지 못했던 정치적 한계가 이번에는 쌍용차 연대 투쟁의 부족함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도 “저렇게 처절하게 싸워도 정리해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구나”라는 수동적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의 민주주의 후퇴 시도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활동가들과 현장의 투사들은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의 자신감과 정치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선전 선동을 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경제 위기 속에 체제에 맞서기보다 협상과 양보에 기울고 노동자 연대보다는 부문주의를 부추기는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를 압박하거나 그들을 뛰어넘는 투쟁을 건설하기 위한 현장 노동자와 투사 들의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 이런 네트워크가 단지 경제적 투쟁뿐 아니라 정치적 투쟁에도 나설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수많은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이 이번에 쌍용차의 투사들이 보여 준 것 같은 투지와 용기를 가지고 싸울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와 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글은 ’다함께’와 업무 및 컨텐츠 제휴를 맺은 진보언론 <레프트21>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