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민주당과 단일화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후보 사퇴 카드 제안
지지자들을 사기저하시키는 제 무덤 파기 “결단”을 철회해야

2009년 10월 22일

오늘(10월 22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10.28 재보선 관련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안산에서 “임종인 후보로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민주당이 이를 위한 “진정성을 보인다면 민주노동당은 전국적 범위의 반MB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 후보 출마 지역[수원, 양산, 충북]에서 과감하게 정치적 결단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당 대표 회담도 제안했다.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로서 민주노동당 후보를 꿋꿋이 지지하고 응원해 왔던 모든 사람들은 이 발표를 보고 뒤통수를 맞는 충격과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재보선 지역들의 유권자들은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지지 호소가 공허하게 들릴 것이고, 어차피 중도 사퇴할지도 모르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자신이 스스로 자기 당 후보들에 대한 사표 심리를 부추기는 행위를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과연 ‘최고위원회’인지 ‘최저위원회’인지 묻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이 다른 지역 후보의 사퇴를 언급한 것은 의미있다”면서도 “이 문제로 당 대표가 회담을 할 때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기갑 대표는 “더 큰 것을 위해서 결단”한 것이라고 이 제안을 정당화했다. “이명박-한나라당 심판은 민주노동당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1야당 민주당의 태도”이기에 “향후 더 크고 강한 반MB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중대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최근에 민주노동당이 했던 말과도 모순된다. 임종인 후보 출정식 때 강기갑 대표는 “힘 있는 정당들이 아무리 당선되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당선된 순간 서민을 눈물 흘리게 하는 이런 정당 이런 정치”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민주당이 공천한 한나라당 출신 철새들이 당선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당선된 순간 서민을 눈물 흘리게” 할 것이다.

수원에서 출마한 민주노동당 안동섭 후보도 출마 성명에서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입신양명을 꿈꾸는 … 후보에게서 이명박 정권 심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까. …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고 무너지고 있는 서민경제를 바로 세울 진정한 대변자[는 바로] … 민주노동당”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의 일방독주, 소수특권정책에 맞서 서민을 위하고 진보적 가치에 헌신할 수 있는가라는 ‘진정성’과 ‘국민적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민주당 옷만 입은 한나라당 출신 철새 이찬열(민주당 수원 장안 선거구 후보)에게 누구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고 “국민적 신뢰”도 생길 리 없다. 지금 수원 장안에서는 한나라당 후보 박찬숙이 진짜 한나라당 후보인 자신을 찍으라고 유세하는 코메디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단지 후보가 한나라당 출신이거나 한나라당과 손 잡았었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민주당의 본질과 성격 자체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 당이 한나라당과 손 잡고 이라크 파병, 한미FTA, 비정규직 확대 등 각종 개악을 추진했던 장본인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민주당의 본질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손학규가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운찬이 민주당 쪽에서 한나라당 쪽으로 쉽게 옷을 바꿔 입는 것이다.

장강은 있고 절벽은 없다

그러므로 최근 민주당과 연대하자는 노골적 주장으로 많은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장강이 없고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엔 절벽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말을 앞세워 노동자를 공격하던 일이 어느 정부에서 시작됐는가? 바로 노무현 정부 때다. ≪공산당 선언≫, ≪자본론≫을 팔았다고 헌책방 대표를 구속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휘둘렀던 것도 노무현 정부다. 검찰청이 진보진영의 주요 인물과 단체들을 관리 추적해 온 것으로 드러나 최근 논란이 된 ‘공안자료 관리지침’은 김대중 정부 때 ‘예규’로 정하고 노무현 정부 때 ‘내부지침’으로 계속돼 온 일이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에도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일관되게 싸우긴커녕 주요한 사안과 결정적 순간에 타협과 야합을 하며 이명박 정부를 도와 줬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여주기 위한 [민주당의] 눈물겨운 노력에 보고 있는 나 또한 눈물이 난다”(손호철 교수)라고 할 정도다.

따라서 이런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심판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완전히 틀렸다. ‘도둑’과 손 잡아 ‘강도’를 이기고 심판하자는 말처럼 말이다. 이런 단일화로 당선한 민주당 후보는 노무현 정부 5년이 보여 줬듯이 배신과 야합을 통해 결국 한나라당의 득세와 장기 집권을 위한 길을 닦아 줄 것이다.

진보진영의 후보가 민주당과 단일화로 당선해도 문제는 생긴다. 민주당과 공조 때문에 계속 발목이 잡히고 진보적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도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과 단일화가 성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반대로 내년에 민주당과 독립적인 진보진영의 독자적 선거 대응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런 단일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사안에 따른 전술적 제휴가 아니라 포괄적인 정책ㆍ강령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을 비판하며 독립적 투쟁을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즉, 진보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공격에 맞선 아래로부터 저항을 고무하고 지도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자제시키고 가로막는 구실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장 이번에도 김영환을 비판하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민주당은 “단일화를 얘기하면서 상대방을 비난, 부정하는 행위는 예의가 아니다. … 무엇이 같은지 왜 같이 가야 하는지 그것만을 생각하라”(10월 9일 민주당 대변인실)며 신경질을 냈다.

이번 재보선에서 진보 후보가 끝까지 중도 사퇴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를 폭로ㆍ비판하며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비록 당장 당선하지 못하더라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싫지만 민주당 10년의 배신도 기억하며 진보적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결집시켜 앞으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진보 후보가 의미있는 득표를 해서 진보진영의 만만치 않은 힘을 과시한다면 한나라당을 위협하며 노동자ㆍ서민들의 자신감과 의식을 고양시킬 것이다.

따라서 일부 자주파나 시민단체 지도자들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며 중재ㆍ거간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유연한 전술’이라는 말로 포장될 수 없는 ‘책략’일 뿐이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스스로 후보를 선출한 민주노동당 당원이나 진보 후보의 지지자들에게도 불쾌한 일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어처구니없는 제 무덤 파기 “결단”을 즉각 철회하고, 모든 후보들이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과도 다른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끝까지 사퇴 않고 선거 운동을 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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