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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 성명]
홍근수 목사님의 삶과 투쟁을 돌아보며

2013년 10월 8일

10월 7일 별세한 홍근수 목사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사회 진보를 위한 투쟁, 반제국주의를 위한 투쟁 등에서 큰 기여를 한 분이었다.

이것은 고인이 맡았던 직책들을 돌아봐도 알 수 있다. 고인은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상임대표, 불평등한 소파(SOFA) 개정 국민행동 공동대표, 매향리폭격장 폐쇄투쟁 범국민대책위 공동의장, MD저지 공대위 공동대표, 효순미선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전국민중연대 상임공동대표, 평택 미군기지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아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1987년 고 문익환 목사의 추천으로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시작된 고인의 이런 실천적 삶은 난관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개를 보여 줬다. 예컨대 고인은 1988년 KBS ‘심야토론’에서 “유럽 나라들처럼 공산당을 합법화시켜야 비로소 민주주의 사회”라고 용기있게 말했다. 이런 발언들이 문제가 돼서 1년 넘게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되기까지 했지만 고인은 굴하지 않았다.

특히 고인은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결성해서 반제국주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에 큰 발걸음을 남겼다. 고인이 결성하고 발전시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지금도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에 맞선 투쟁에 앞장서며 반전평화를 위한 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고인이 건강 악화와 지병으로 너무 일찍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난 것은 큰 아픔과 운동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지와 격려

노동자연대다함께는 고인과 관련해서 각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고인은 이미 1990년 말부터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국제사회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방어해 주셨다. 고인은 탄압받는 사회주의자들을 방어하는 데 열심이었고, 더 많은 단체들이 이런 방어에 나서도록 촉구했다. ‘정견의 차이를 떠나서 전체 운동의 발전을 위해 단결해서 탄압에 맞서야 한다’는 고인의 자세는 모두의 귀감이 될 만했다.

이런 소중한 인연은 이후에 반전 운동 등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 학살을 규탄하는 투쟁 등에서 노동자연대다함께는 고인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런 투쟁 속에서 우리는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서 제국주의의 야만과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고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은 장소 제공이든, 연서명이든 이런 운동에 보탬이 될 만한 어떠한 제안도 좀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고인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급진적이었다. 고인은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권의 배신에 대한 비판을 주저할 때도 거침없이 김대중 퇴진을 주장할 정도였다.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혁의 기대를 배반하고 이라크에 파병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고인의 비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송두율 교수가 마녀사냥 당할 때도 고인의 원칙있는 태도는 돋보였다. 송두율 교수의 ‘북한 노동당 가입’ 사실이 드러나 많은 진보 인사가 등을 돌릴 때도 고인은 ‘그게 뭐가 문제냐’며 사상의 자유라며 꿋꿋하게 송두율 교수를 방어했다.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주장과 실천에 대해서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고인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린다. 재미있으면서도 통쾌하게 지배자들과 기성사회를 비판하던 고인의 음성도 들리는 듯하다.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한다.

2013년 10월 8일
노동자연대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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