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URL

확대쟁대위 이후 철도노조 투사들의 과제
사태 변화의 가능성을 보며 전면 파업으로 확대를 준비하자

2013년 11월 29일

11월 26일 확대쟁대위에서 집행부는 만만찮은 반대 주장을 억누르며 전면 파업 전술을 번복하고 ‘필공 파업’ 전술을 밀어붙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조합원들에게 공언해 온 투쟁 방법을 대결을 코앞에 두고 뒤집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제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상황에서 집행부가 이렇게 후퇴한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정부는 확대쟁대위 결과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확대쟁대위에서 한 차량지부장은 이렇게 적절히 지적했다. “[파업은] 파괴력을 발휘해야 효과가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도 전면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필공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필공 파업해도 불법이 될 것은 뻔하고 그러면 미필수 인력으로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탄압받을 텐데, 이후 조직력도 담보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와의 정면 충돌이 다가오면서 철도 노동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기어이 민영화를 밀어붙이려고 마녀사냥과 속죄양 찾기,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시도 등 온갖 꼼수를 부릴 것이다.

그런데 집행부는 지금 효과적 투쟁 방법을 채택할 필요성 앞에서 주춤하는 듯하다. 집행부는 각계 주요 인사들이 참가한 ‘원탁회의’도 파업 지지를 위한 광범한 연대 투쟁을 구축하겠다는 목적보다는, 대정부 협상과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중재자로 삼고 싶어 하는 듯하다.

집행부가 단호한 투쟁보다 협상에 치중하는 태도는 필사적으로 전면 파업을 회피하는 이유와 관계 있는 듯하다. 일단 노조가 먼저 ‘합법 절차’를 존중해야 정부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특히, ‘원탁회의’에서 중개인 구실을 자처할 민주당도 파업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보면,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나 공약 파기 등 다른 모든 쟁점에서 그렇듯이 철도 민영화 문제에서도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기대하는 것이 몽상이다. 전면 파업과 같은 효과적 저항 방법을 피해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 이유 자체가 지속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가 계급이 단호하게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설사 사회적 논의기구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정부는 이를 이용해 투쟁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이나 경실련 등이 어떤 불만족스런 타협안을 내놓을지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수서발 KTX 분리에 반대하면서도 이 법인을 ‘공기업’으로 보거나, 철도공사 적자 해결을 위한 내부의 ‘경영혁신’(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온건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시하는 ‘사회적 갈등 해소·중재’도 노동자 편에 괜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실련은 얼마 전에도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과 고통 분담”을 이유로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원회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IMF 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고통전가’를 강요했을 뿐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온건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중재로는 박근혜를 물러서게 만들 수 없다. 철도노조의 투쟁만이 그럴 수 있다.

사실 지금 민주당 등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간 쌓아 온 철도 노동자들의 반민영화 투쟁과 그 효과인 광범한 반민영화 여론 때문이다.

꾀죄죄

집행부는 필공 전술이 이번 파업에 ‘합법’성을 부여해 “지속적이고 완강한” 투쟁을 보장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러 투사들이 지적했듯이, 정부는 ‘민영화 반대’ 요구를 이유로 투쟁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탄압을 가할 것이다.

아직도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2009년 필공 파업의 합법성 판결 여부가 이 투쟁의 전술을 결정할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전교조 불법화 시도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부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또한 1994년 지하철·철도 기관사 파업을 앞두고 시도한 전지협·전기협의 준법 투쟁에 대해 김영삼 정부 각료가 ‘변증법적으로’ 일갈했듯이 (지배자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준법(투쟁)도 불법이다.”

전면 파업이 광범한 지지를 잃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 기관차지부장의 말처럼 “우리가 힘이 있을 때 지지도 따라온다.” 전교조 교사들이 법외노조화를 감수하고 시정명령을 거부한 것은 고립은커녕 오히려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확대하는 효과를 냈다.

1백만 명 넘게 참여한 민영화 반대 서명이 보여 주듯, 민영화 반대 여론은 광범하다. 특히, 전국 곳곳에서 기층의 대책위들이 철도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다.

집행부가 말하는 ‘국민적 지지’는 사실상 전면 파업 같은 효과적인 실력 행사를 불안해 하는 민주당 등 일부 친시장경제 세력의 지지 이탈을 우려하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당처럼 한결같지 못하고 꾀죄죄한 친자본가 야당의 지지를 위해 노동자의 손발을 묶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부 활동가들은 전면 파업할 조직력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필공 전술을 위해 파업 참가 조합원과 불참 조합원으로 나누면서부터 조직력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조합원 모두가 함께 불법을 감수하는 것은 단결을 이룰 수 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해 탄압의 수위도 대폭 낮출 수 있지만, 일부만 불법을 감수케 하는 것은 조직을 분열시켜 조직력에 해롭다.

사실, 노동조합 내에서 의식과 투지의 불균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선진적 부분이 아직 뒤처져 있는 부분을 설득하고 입증해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노조의 투사들은 전면 파업 결정이 며칠 전 확대쟁대위에서 필공 파업 전술로 번복됐어도, 이것으로 논란을 끝내야 한다고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무리수를 둔다든가 하는 따위의 이유로 전면 파업이 재점화될 수도 있다는 열린 전망을 갖고 투쟁에 임해야 한다.

가령 1996년 12월 26일, 새누리당의 전신인 당시 집권당 신한국당은 새벽에 소속 국회의원들만을 의사당에 소집해 노동법·안기부법 개정안(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의회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 여당의 이런 무리수는 당시 야당과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격분케 했고, 조합원들을 자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물론 여러 조건들이 변해 지금 박근혜 정부가 무리수를 둔다 해도 철도 민영화 문제로 민주노총 전체가 파업에 나서는 일이 가능성이 큰 일은 아닐 성싶다. 하지만 적어도 철도 노동자들은 큰 분노와 큰 자신감으로 투쟁에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것이다. 그러면 노동운동의 나머지 부분도 큰 자신감과 함께 연대 행동들을 개시할 것이다.

고심, 고민

전면 파업을 주장했던 동지들은 아마도 지금 무척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집행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체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공 명단을 작성하는 것도 매우 고통스런 일일 것이다. 뭐라고 조합원들을 납득시키며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같이 죽자”고 설득해야 할지 어려움을 토로하는 동지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 파업을 주장하며 서울·수도권 지부들을 규합해 온 서울지방본부장이 ‘더 이상의 논란을 접고’ 집행부의 방침을 따르자는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전면 파업의 대의를 옹호한 다른 투사들을 힘 빠지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파편화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현 상황에 체념하지 말고 전면 파업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하며, 집행부의 의지 부족에 좌절하지 말고 기회가 오면 독자적으로라도 싸울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정치적 압력은 상당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는 후퇴가 아니라 투쟁의 전진을 위한 정당한 시도다. 이것은 노조의 단결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조합원들을 필공과 미필수로 가르지 않고 단결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철도노조 내부로만 시야를 한정하지 말고 이 파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세와 전체 계급세력 관계를 고려해 보면 결코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집행부가 현재 전면 파업의 의지가 없다고 해서 투사들이 실망하고 좌절해 올바르고 필요한 주장을 거둬들일 필요는 없다. 필공 파업에 돌입하면서도 조합원들에게 전면 파업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해 그들을 준비시키고, 사태 변화에 따라 전면 파업으로 확대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전면 파업을 주장했던 투사들은 이런 전망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대담하게 싸울 태세를 갖춘 단단한 일부라도 서로 연계를 맺고, 도래할지도 모를 전면 파업 기회에 대비해 미리 조직하자.

2013년 11월 29일
노동자연대다함께

맨 위로 목록으로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