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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의 동북아 질서와 북한 핵문제

2007년 1월 3일

이 글은 지난 12월 7일 한반도 평화주간 토론회 2부 토론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연사로 참가한 다함께 김하영 동지가 발표한 글이다.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지 3주 만에 6자회담 재개가 북미 사이에 합의됨으로써 신문 지상에서 북한 핵실험 관련 소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마치 사태가 일단락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은 핵폐기와 그에 대한 검증 등 난제를 안고 있어 전망이 밝지는 않다. 설사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북미회담 또는 6자회담의 지난 합의들과는 달리 과연 이행될 것인지 보장이 없다.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가 언급한 북핵 포기 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또는 "한국전쟁 종료 선언"(백악관 대변인 토니 스노)은 지난 합의들에서 이미 언급됐다가 이행되지 않은 것들이다.

6자회담이 비틀거려 온 것은 CVID의 세부사항 같은 쟁점 탓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6자회담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북한을 서로 다르게 위치 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그 자체의 해결을 넘어 동북아에서 자국의 영향력과 주도권을 유지·향상시키는 문제와 연계해 생각한다. (이 점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도, 해결되지도 군사적 파국을 맞지도 않는 상태로 1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도 모두 동아시아의 세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올바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얽혀 있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냉전 해체 이후의 제국주의 질서와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 위협"을 유지하기

미국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1994년 한반도를 전쟁 코앞으로 몰고 간 1차 북핵 위기는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를 맺으면서 일단락됐다.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 2기와 경수로 완공까지 중유를 제공받게 돼 있었다. 또,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2항(1))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클린턴 정부 내내 이행이 지연되다가 부시 정부 들어서 마침내 전면 부정된다.

부시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제네바 합의(1994년)와 북미 공동성명(2000년)을 존중할 의사가 없었다. "불량국가"를 상대로 보상 약속을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식이었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 북한이 테러를 비난하고 미국에 위로를 전한 뒤 국제적 테러에 대항하는 협약에 서명할 것을 발표했는데도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의회에 제출된 핵태세검토(NPR) 비밀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공격 가능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것은 제네바 합의 위반인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었다.

부시는 비록 지켜지지 않고 있는 합의들일지라도 그것이 일본·남한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북한과 관계개선 하려는 효과는 내고 있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이러다가는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일본이 미국보다 아시아와의 관계에 무게를 싣게 될까봐 걱정이 됐을 것이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의 평양 방문이 고이즈미 평양 방문 몇 주 뒤였고 고이즈미 평양 방문의 의의를 한꺼번에 뒤집는 결과를 낳았던 점은 시사적이다.

부시의 특사였던 제임스 켈리의 방북이 새로운 북핵 문제(농축우라늄 프로그램)를 일으킬 목적이었지 해결할 목적이 아니었던 것만큼은 매우 명백했다. 당시 회견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4개의 다른 분야에서 융통성 ― 미사일 개발과 수출, 북미협상의 진전,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사,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장래 역할 ― 을 보여주었지만 이 모든 것은 켈리 대표단에 의해 무시당했다. 그 결과는 북한 당국의 NPT 탈퇴와 영변 원자로 재가동이었다. 부시 정부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조장하고, 그렇지 않아도 이미 긴장돼 있는 지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 꼴이었다.

물론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 위협’을 해소하지 않고 잔존시키면서 미군이 동아시아에 남아있어야 할 명분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부시 정부는 북한을 세계 체제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 우선순위라고 주장하곤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북한 경제가 세계 경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진 2002년 북한의 경제 개혁을 부시 정부는 지지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대하지 않았다. 또, 클린턴 정부에 이어 부시 정부도 북한이 국제 기구 또는 지역 기구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북한은 WTO에 옵서버 자격으로라도 가입하고 싶어하지만 미국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북한 위협’이 없었다면 MD 구축을 위해 미국 정계를 설득시키기도, 일본을 끌어들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무서워 MD를 구축한다는 건 누구도 믿지 않는 얘기다. 신보수주의자인 로렌스 캐플란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했다. "미사일방어의 실제 목적은 미국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세계 지배를 위한 도구다."

부시 정부의 세계 전략과 동아시아

MD 구축 등 군사력 증강에 대한 몰두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세계적 지위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의 통찰은 이런 불안을 잘 묘사하고 있다. "냉전 종식으로 일부 관찰자들이 "단극적인" 세계 또는 "유일 초강대국" 세계라고 부른 상황이 조성됐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은 냉전 초기와 달리 세계적 의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 미국은 냉전기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경제적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세계 GDP에서 미국과 유럽연합과 동아시아가 각각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현재 21.79, 20.67, 23. 18인데, 2015년에는 18.86, 19.39, 25.03으로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연합도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된다.(출처 International Futures Model) 독일과 프랑스의 시간당 산출량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림 1은 세계 수출에서 독일 경제와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추월 또는 바짝 추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네오콘의 세계 전략은 미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장기적인 경제적·지정학적 위협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있으며,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권력 분포를 자국에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시도다. 현재 미국의 군사력은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러시아, 독일 등을 합친 것보다 앞서는데, 19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영국 제국주의조차 이 정도의 우위를 누린 적은 없었다(그림 2).

9.11 테러는 네오콘에게 끝내주는 기회였다. 1990년대 미국 "신경제"의 종말과 9.11 테러에 따른 공포라는 두 가지 조건 속에서 네오콘의 의제는 비로소 부시 정부와 의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미국 <국가안보전략>에 명시적으로 등장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미국 군사력의 필수적인 역할을 재확립할 때이다. 우리는 도전을 능히 압도할 국방력을 건설하고 유지하여야 한다." 군사력 증강에 대한 그들의 확신은 놀랍도록 노골적이다. "미국의 핵 우위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런 세계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보존하는 근본 요소가 될 것이다."(’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의 국방전략위원회)

물론 부시 정부는 "도전"이 깡패국가들로부터만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좌파의 일부를 포함해)이 오늘날의 전쟁에서 강대국들 사이의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지만, <국가안보전략>은 이런 가능성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다른 강대국들로부터의 공격에 강하게 저항할 것이다. … 우리는 이 지역에서 과거의 낡은 강대국 권력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에 유의하고 있다." 여기서 이 지역이란 "아시아"를 뜻하는 것이다.(이 글에서는 유럽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아시아가 강대국 권력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몇 해 전에 브레진스키는 "어떤 측면에서 오늘날의 아시아는 불길하게도 1914년 이전의 유럽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임시적 안정 상태"이지만 "갑작스런 충격을 받아 파괴적인 연쇄반응"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이 지역의 안정은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국력이 성장하면서 도전받고 있"는데 그 핵심은 "부상하는 중국"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중국을 가장 걱정스럽게 그리고 있다. "최악의 공산주의 유산을 벗어버리기 시작한 지 4반세기가 지나도록 중국의 지도자들은 그들 국가의 성격에 관한 근본적 선택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이웃들을 위협할 수 있는 첨단 군사능력을 추구함으로써 중국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위대함을 깎아내릴지도 모를 낙후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가 흔들릴까 봐 걱정한다.

미국이 소련을 주적으로 여기던 때에 미국은 소련의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몰두했다. 레이건 정부는 중국을 우방으로 묶어두기 위해 소련 군대에 대한 위성 자료 공유, 첨단 컴퓨터 지원 등 군사적 유인책도 썼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국-러시아-북한을 전통적 동맹으로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런 시절과 비교해 보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냉전 이후 질서의 새로운 전개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하나는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에 바탕해 군비 지출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점이다. 다소 과장도 있긴 하지만 중국이 2020년경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고, 중국의 국방예산은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두 배 증가했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한 태도를 놓고 분열하고 있다. 즉, 중국 투자로 얻는 막대한 이윤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중국 경제의 확장이 가져올 중국의 강력한 정치·경제 권력을 두려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미국에 상품을 수출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다시 그 돈을 미국에 빌려줘 미국이 중국 상품을 계속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는 미국 지배계급에게 큰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이 중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기를 증강하고 동맹을 다진다고 미국 정부가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은 부시 정부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다. 동아시아의 최빈국을 들먹이기는 중국에 대해 그렇게 하기보다 몇 배는 쉽다.

동맹의 구축

중국의 도전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대응은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 정도까지 일본을 의구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요즘 미국 지배자들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스럽게 얘기하듯이, 1980년대에는 일본이 그럴 수 있을지가 걱정거리였다. 냉전 시기 동안 미국 날개 아래 있으면서 너무 커버린 동맹국이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는데도 미국을 등지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반대 급부, 즉 동맹을 묶어두는 효과도 동시에 거두고 있다. 마치 레이건 시절 소련과의 대결이 다른 서방 열강들에 대한 단속 효과도 냈듯이 말이다. 불가능한 조합처럼 생각되지만 미국 지배계급의 일부가 중·일 동맹의 출현마저 우려해 왔음을 알면 이 효과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MD 참가는 결정적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 위협"이라는 코드를 통해 이뤄낸 일이다. 하지만 미·일간 갈등의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일본은 아시아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비견되는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발족시키려 했다가 미국의 적극적 반대에 봉착한 바 있다. "당시 미국 관계자들은 ’일본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어쨌든 지난 몇 년 동안의 추세는 명백히 미·일동맹 강화였다. 이것은 "아시아의 영국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는데, 즉 평화 헌법의 굴레를 벗고 무장화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부담을 일본이 나눠지도록 하는 정책인 동시에, 브레진스키의 표현대로라면 "대미 의존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일본"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안보 보호국이 아니라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유능한 군사 동맹이 되면 중국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반미적 방향으로 돌리고자 범아시아 정서를 부추길 가능성이 감소"될 것이다.

9.11은 이 추세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이어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했다. 2004년 쓰나미 재앙 때 해상자위대를 파견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지역에는 아시아 주요 국가(경쟁국)의 경제를 마비시킬 만큼 중요한 항구들이 있고, 석유 이동로이기도 하다. 2005년 5월 일본이 타이에서 코브라 골드 군사 훈련에 참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일본 의회는 2004년 12월 무기 수출에 관한 금지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고(미국은 일본의 첨단 과학 기술을 미국의 방위 설비에 활용하고 싶어한다), 2005년 2월에는 대만 주변을 "공동의 전략 목표"로 포함시켰다. 최근에는 일본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하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훨씬 쉬워진다. 이런 조치들은 동아시아를 심각한 불안정에 빠뜨릴 수 있다.
예컨대 대만 문제가 그렇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만 문제가 가까운 미래에 중·미관계를 충돌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변수라고 본다. 중국에게 대만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동쪽의 대만을 포기한다면, 북쪽과 서쪽의 광범한 비(非)한족 지방들은 왜 안 되겠는가? 미국의 우파에게 그것은 중국을 제국의 대열에서 밀어내 2류 열강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러시아처럼 말이다." 만일 대만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과거 어느 전쟁보다 끔찍한 전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과거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벌어지는 최초의 전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해 놓았다(<핵태세검토보고서>). 그리고 전략적유연성에 따르면 한국군도 이 사태에 연루될 수 있다.

미국은 9.11을 아시아의 동맹을 묶는 기회로도 활용했다. "9월 11일의 테러 공격은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호주는 항구적 자유 작전에 세계 최정예 전투 병역을 파견 … 한국과 일본은 테러공격이 발생한 지 몇 주도 되지 않아 전례 없는 수준의 병참지원을 제공 … 태국, 필리핀과의 반테러 협력을 강화 … 싱가폴과 뉴질랜드로부터 값진 지원을 얻었다."(<국가안보전략>) 곧이어 인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러한 우려[가] 과거 인도에 대한 미국의 사고를 지배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인도를 미국과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떠오르는 세계 강국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중앙아시아까지 포함하면 이것은 완벽한 중국 포위다.

인도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중국과 일본을 서로 적대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기본이다. 미국의 동맹 구축 속에서 강화되는 일본의 무장력은 중국을 자극하고 동아시아를 불안정에 빠뜨리는 태풍의 눈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북한 핵무기는 빌미일 뿐, 미·일 군사력 강화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북핵 문제와 얼크러지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북핵 문제는 지나치게 불거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게 좋을지 모른다. 사실, 이것은 네오콘이 내뱉는 강경한 말과는 차이가 크다. 네오콘의 입장은 (그들조차 다 통일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여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시 정부가 이런 방안을 따른 적은 없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부시 정부는 말은 네오콘처럼 하고 행동은 클린턴처럼 했다. 엄포를 놓았다가 북한의 반발이 있으면 양보를 할 듯한 태도로 협상장에 나와 시간 끌기가 부시 정부의 패턴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간 끌기를 타계하기 위해 북한은 회를 거듭할 때마다 강도 높은 반작용을 가했다. 2003년 초에 NPT를 탈퇴하고 원자로 재가동에 들어갔고, 2005년 초에는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고, 2006년 10월에는 마침내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런 반작용은 미국 입맛에 맞게 북핵 문제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줬는데, 북한은 미국의 어려운 이라크 점령 상황을 이용함으로써 기동의 여지를 넓히곤 했다.

반면, 이라크에 발목이 묶여 있는 부시 정부는 호통치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드는 세력을 손봐주지 못해 체면은 체면대로 손상되고, 이라크는 북한과 달리 대량살상무기가 없어서 침략당한 거 아니냐며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마저 훼손되는 일종의 악순환 같았다.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정부의 ’해결’ 방식은 점점 신뢰가 떨어졌다. 미국의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완전 실패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강력한 경고만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전력하는 동안 이라크 상황이 악화된 동시에 나머지 세계에 대한 통제력도 떨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미국은 자존심의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북한을 6자회담을 끌어내야 했다. 만약 그렇게라도 하지 못한다면 과연 미국을 믿고 핵무장을 안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동맹들의 신뢰가 추락할 것이고, 미국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최소화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위협을 다루는 능력을 보여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된 셈이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서남·중앙아시아에서도 활발한 외교로 영향력을 높여 왔다. Globeso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시아 지역의 응답자들은 국제 정치에서 중국의 역할을 미국의 역할보다 더 우호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중국의 이런 행보는 어떤 점에서 미국의 중국 포위 외교에 대한 대응책이다.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했고, 이란·몽고·파키스탄·인도에게 SCO 옵서버 자격을 줬다.

미국은 비록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격려하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제고가 한미동맹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염려한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 한국과 미국 간에 존재하는 북한 핵 처리에 관한 견해 차이를 활용하여 겉모습과는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양자의 사이를 더욱 벌리려고 교묘하게 시도하는 것이다. 미국의 태도가 완고하고 극단적인 것처럼 보일수록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나아가 핵문제 처리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 간에 균열이 발생하는 경우, 이는 적어도 미국 지위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일본에 관한 한, 미국이 동맹관계에 대해 큰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핵무장과 관련해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북핵 위기가 초래할 수 있는 한 가지 결과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일본도 핵무장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일본은 쉽고 빠르게 핵을 개발할 능력이 있다. 미국 네오콘 가운데는 일본의 핵무장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이렇게 되면 상황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이 동북아 지역의 강대국으로서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되 미국에 복종하게끔 해야 한다’는 미국의 의도는 성취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남한 지배자들도 핵무장을 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은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고, 상황은 순식간에 미국의 통제 밖을 벗어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소결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세력 관계를 간단히 살펴봤다. 이것은 북한 핵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몇 가지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우선, 북한 핵문제를 북미간의 문제로만 단순화시키지 않도록 도와준다. 심지어 부시 정부의 말과 북한 당국의 말을 통해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보면, 부시 정부는 대북 전쟁 계획을 세웠다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물러선 게 된다. 북한의 핵무기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력이라는 긍정 효과가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이라크 전쟁의 효과를 계산에 넣지 않고는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라크 쟁점이 지배적이었던 미국 중간선거도 마찬가지다. 또, 근저에 깔린 미국과 중국,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 간의 이해관계(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동맹국들로 핵무장 확산이 끼칠 영향이다)를 알아야 북핵 문제가 떠오른 진정한 이유와 협상 과정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만 있다면, 미국에게 북한은 그렇게 신경 쓸 만한 대상이 못 된다. 설사 핵무기 2∼3개를 가졌다 해도 말이다. 북한이 주변국과 맺는 관계가 동북아의 세력 관계에 변화를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은 여기에 끼어들어 자국 패권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려 하는 것이다. 사실, 북한 핵문제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도 강대국간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미국 민주당의 득세, 심지어 민주당 정권 탄생이 세계와 동아시아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냉전 해체 이후 위협받고 있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은 네오콘만이 아니라 미국 지배계급 전체가 공유하는 전제다. 서로 방식만 다를 뿐이다. 부시 정부의 정책은 많은 점에서 클린턴 2기 시절과 닮았다. 대북 정책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면) 특히 그렇다. 더구나 최근 떠오르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네오뎀’이라고 불리는 매우 보수적 인물들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가 북한의 핵폐기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이해하게 해 준다. 상황은 훨씬 복잡하고 근본적이다. 북한 핵이 미국의 군비 증강과 동맹 강화를 위한 핑계일 뿐이라면 미국은 핵 폐기 뒤에라도 다른 문제를 들고나올 수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뒤에 북미간에는 미사일 협상이 있었고, 미국은 생화학무기도 문제삼을 수 있다. 몇 주 전에 부시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핵이 폐기되더라도 인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관계개선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설사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 해도 동북아의 불안정 요소가 사라진 게 아니다. 북핵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됐느냐에 따라 새롭게 형성된 세력관계가 또 다른 불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만 문제가 대표적인 위험 요소다. 남한의 불안정 요소가 북핵 문제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남한은 대만 문제에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는 상태다. 사실,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간 경쟁, 특히 부상하는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한 불안정 요소는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

넷째, 6자회담의 당사국들 사이에서 진정한 지역 평화의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6자회담 테이블에 모여 앉은 당사자들은 똑같은 비중으로는 아니지만 동아시아를 불안정에 빠뜨리는 데 일조하는 세력들이다.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은 이 나라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질 이유가 없다. 중국은 티벳을 비롯한 소수민족에 대해 무자비한 억압을 일삼고 있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남한 정부의 주도적 중재 역할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고 한미FTA에 열성인 한국 정부가 6자회담 테이블에서만 괜찮은 구실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지지하는 심정은 십분 이해하면서도 6자회담의 한계를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으로부터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과제가 나오는데, 그것은 시민·민중 진영이 반전 평화운동을 적극 건설하고 국제적 차원의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이 나서는 국면에서 시민·민중 진영이 할 일은 없다는 식의 사고는 사회의 변화 주도력이 위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이 핵실험을 한 북한에 군사적 제재를 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 이유인 이라크 수렁은 결코 어느 나라 정부가 아니라 이라크 저항세력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반전 운동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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