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노동자연대 성명
이갑용 씨는 선거를 위해 타 단체 왜곡 비방을 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11월 6일

좌파노동자회 허영구 선거대책위원장 이갑용 씨가 노동운동 내 좌파들의 민주노총 직선제 공동 대응 논의 과정, 그리고 좌파 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 대한 입장을 11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갑용 씨는 좌파노동자회가 이 논의 과정에서 취했던 입장과 태도에 대해 솔직하지 않은 주장을 펴면서, 좌파 단일 후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다른 좌파 단체들의 책임인 양 말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글에는 노동자연대에 대한 곡해와 근거 없는 비방도 포함돼 있다.

이 글에서는 이갑용 씨의 곡해를 바로잡기 위해 두 가지 점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겠다.

1. 좌파 후보 단일화 논의는 왜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가

이갑용 씨는 마치 좌파노동자회가 좌파 후보 단일화에 열과 성을 다한 것처럼 말하면서 단일화 좌절의 책임이 다른 단체들에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9월 20일 노동전선의 제안으로 시작된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에 대한 좌파의 공동 대응 논의’에서 좌파노동자회는 보름 정도 만에 일찌감치 이탈했다. 이갑용 씨는 그 이유가 “아무런 내용의 동의 없이 단일화를 위해 선거인단을 구성”하자고 해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좌파노동자회를 포함해 민주노총 직선제에 공동 대응할 의지가 있는 좌파 단체들(노동전선,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노동자연대,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좌파노동자회)은 토론을 통해 ‘공동 대응의 기조와 방향’을 마련했다. 핵심은 투쟁하는 민주노총을 만들기 위해 좌파적 지도부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현 국면에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각 단체의 서로 다른 고유한 주장들을 앞세우지 말고 먼저 공통분모를 찾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동 대응의 기조와 방향’을 마련하는 토론에도 참가했던 좌파노동자회가 그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자신들의 ‘5대 혁신 과제’ 수용 여부를 앞세우고 나선 것은 다른 단체들과 공조하려는 자세라고 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5대 혁신 과제는 좌파노동자회의 고유한 주장으로 다른 단체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연대는 불안정노동체제에 따른 노동운동의 전략 변화 필요성,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신, 좌파노총론 같은 좌파노동자회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갑용 씨는 ‘5대 혁신 과제를 받을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자’는 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좌파 후보 단일화에 열과 성을 다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鶴)이 다른 동물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주둥이가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은 이솝 우화에 비유할 수 있다.

한편, 이갑용 씨는 10월 6일 회의에서 개인 의견을 전제로 민주노총 조합원 1만 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실시하는 ARS 방식으로 후보를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지도 조사 이상의 효과를 내기 어려워 좌파들의 선거운동과 후보 선택 방식으로 적절하다고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좌파노동자회는 이외의 방식으로는 좌파노동자회 후보를 당선시키기가 어렵다고 봤던 듯하다.

요컨대 5대 혁신 과제라는 내용에서든,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선전할 위원장 후보 문제에서든, 타협이 요구되거나 불리할 수도 있는 조건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좌파노동자회의 솔직한 처지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좌파단체들이 이번 선거에서 공동 기조로 좌파적 지도부 세우기에 합의하고, 그것에 가장 합당한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좌파 후보 단일화는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기 가장 중요한 과제에 대한 인식이 상이한데도 억지로 공조를 추진할 수는 없고, 단일화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좌파노동자회가 좌파 후보 단일화 합의가 최종 무산된 이유를 다른 단체들에게로 돌리는 것은 부당한 책임 전가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2. 노동자연대는 과연 “통진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주장해 왔”는가

이갑용 씨는 “좌파공동대응 논의 과정[에] … 몇 가지의 의문점”을 제기했다. 즉, “좌파노동자회 공약에는 야권연대를 주장한 세력과는 선거를 함께하지 않는다는 공약과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지난 시절 통진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주장해 왔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변혁적 계급 정당을 추진하는 동지들이 노동자연대 동지들과 선거를 함께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요컨대 노동자연대가 정치적으로 무원칙한 단체이며, 따라서 좌파 공동 대응 실패의 책임은 노동자연대를 끌어들인 노동전선과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위원회’ 등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전선 등 다른 단체들의 입장을 논할 이유는 없다. 다만, 좌파 공동 대응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독자 출마를 정당화하려고 엉뚱하게 남의 단체(노동자연대)의 활동과 주장을 왜곡ㆍ중상하는 것은 날카롭게 반박할 수밖에 없다.

주장의 근거 없음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이갑용 씨는 자신의 주장이 자신의 실천과 모순되는지는 알고 이렇게 주장하는지 궁금하다. 좌파노동자회가 “진보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주장”해 온 노동자연대와는 “선거를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처음부터 좌파 공동 대응 논의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노동자연대의 파견자들이 포함된 회의에서 버젓이 수차례 공동 논의를 해 놓고서는 (노동자연대의 참가를 문제 삼은 적도 없다) 이제 와서 노동자연대 때문에 단일화에 함께할 수 없다는 듯이 주장하는 것은 남사스러운 일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신 분이 이래서야 되겠나.

둘째, 노동자연대가 “진보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주장해 왔다”는 것은 단순한 왜곡이다. 노동자연대는 2008년 이후 민주노동당/진보당 지도부의 전략적 야권연대 추진을 거듭 반대하고 비판해 왔다.

<노동자 연대> 사이트에 ‘야권연대’라는 단어를 놓고 검색해 보기만 해도 안다. ‘야권연대는 안 됩니다’, ‘야권연대가 아니라 … ’, ‘…에 도움이 안 되는 야권연대’ 식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백 개도 넘게 이어진다. 심지어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울산시장 진보 후보의 야권연대 논란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과는 단일화하지 말자’는 이갑용 씨가 옳다는 입장도 내놓은 바 있다.

이러니 이 문제를 구구절절 해명하는 것도 구차스러울 정도다. 분별 있는 노동운동 활동가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갑용 씨는 절대로 야권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하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야권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현명할까? 예를 들면, 각별히 반동적인 우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진보파나 개혁파로 여기는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단일화 압력이 생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국회에서 특정한 개혁 입법을 쟁취하거나 특정한 악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일부와 불가피하게 공조해야 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런 조건에서는 일단 우익의 당선을 막자는 정서에 함께하면서 대중투쟁을 준비하자고 호소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이런 방침이 불가피했다는 것은, 예컨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한 후 민주노총 조합원 활동가 5명이 자결한 것이나, 당시 독자 출마한 좌파 후보 둘이 합쳐 아쉽게도 0.2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에서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이런 점에서 이갑용 씨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의 원인”이 모조리 ‘야권연대’ 정치에 있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세력은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면적 견해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전략과 전술을 구별해야 하고, 배신적 타협과 불가피한 타협을 구별해야 하고, (타협이 불가피한 경우에)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해야 한다. 전략적이고 배신적이고 무비판적인 NL식ㆍ정의당식 야권연대를 노동자연대는 언제나 날카롭게 비판해 왔다.

한편, (1) 어쩔 수 없는 경우에, (2)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3) 그저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4)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5)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않는 것은 완전히 정당한 사회주의적 전술이다.

바로 이런 방침에 따라 볼셰비키는 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정당 카데츠와도 때로 선거 제휴를 했다. 농민(농촌 중간계급) 정당인 트루도비키와 때때로 제휴했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많은 회원들이 레닌과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과 스스로 동일시할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아나키즘이나 좌익 공산주의(판네쿠크나 호르터 식의)에 일체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들이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하는 점은 자기들이 개량주의의 본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따라서 개량주의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개량주의는 그 지도자와 이들의 이데올로기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심지어 개량주의적 기관이나 제도의 문제로 환원될 수도 없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시민사회’에 관해 논의했을 때, 그는 노동자 계급의 광범한 대중이 혁명보다는 점진적 개혁 쪽으로 이미 설득된 현실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했던 것이다.

달리 말해,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인 것이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그러나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는 개량주의를 그저 그 지도자들과 그들이 장악한 조직과 기구의 문제로 본다. 그렇기에 허영구 씨 등이 민주노총 집행권을 장악해 산별 조직들을 해체하거나 무력화시키거나 우회하면 개량주의 문제는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일상적 시기에 개량주의적이던 노동자들이 이따금 스스로 해방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수준까지 스스로 격상될 수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행위다” 하고 선언했던 것이다.(제1인터내셔널 창립선언의 앞글)

노동자 계급의 대중 정당이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과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 노력을 방해한다. 그래서 진보당, 정의당 등의 지도자들이 전략적 야권연대로 돌진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정당이 조직 노동자 계급의 일부에 기반을 둔 (온건한) 진보 세력이길 중단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에도 정의당과 진보당을 지지하는 선진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을 원칙상으로 민주당(새정치)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똑같이 취급할 순 없다. 새누리당(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동일시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르크스가 거듭 강조했듯이, 사회 변동의 동력은 계급투쟁이다. 아래로부터 노동자 계급투쟁을 건설하려면, 각자 정치적 색조가 다르더라도 집단적 이익을 지키는 행동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줄 아는 정치가 좌파에게 필요하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선전을 앞세운 종파주의로는 그런 대중 투쟁에 필요한 단결을 이끌어 내기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가 ‘야권연대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으로 정치적 변별성을 내세우려 하는 것은, 대중투쟁을 위한 단결보다는 제도권 공식 정치의 선거판에서 독자 후보로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것에 좀 더 관심이 있는 걸로 비쳐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좌파노동자회와 이갑용 씨는 올봄에 각종 민영화 공세와 세월호 문제 등을 놓고 노동자 대중파업 건설 필요성을 주장하기보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 등에 독자 출마하는 것에 더 큰 관심과 에너지를 쏟았다.

좌파노동자회의 이갑용 씨와 허영구 후보가 자신들의 전망이나 지향에 따라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자신들의 판단 몫이다. 자신들의 주장과 실천을 조합원 대중에게서 검증받으면 된다.

그러나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좌파 공동 대응(후보 단일화)에 형식적으로 참여했다가 자신들의 판단으로 빠져 놓고는 단일화 무산의 책임을 다른 단체들에 떠넘기려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이런 태도는 전혀 동지적 자세가 아니고 좌파답지도 않은 태도다. 우리는 노동운동 좌파 진영 내 단체들 간의 정치적 이견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방의 주장과 실천을 곡해하지 않고 공정하게 다룰 때 생산적 논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갑용 씨의 태도는 심히 함량 미달이다.

2014년 11월 6일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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