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규제프리존법 통과 규탄한다

이러려고 평양 갔나?

2018년 9월 20일

오늘 정부·여당과 보수 야당들이 기어이 (은산분리 완화 법안과 더불어) 규제프리존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교활하게도 민주당은 기존 법률인 지역특화발전특구법을 개정하는 것처럼 하면서, 규제프리존법에 담긴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해 통과시켰다. 자신들이 발의한 법률이 이렇게 통과되는 것에 자유한국당이 볼멘 소리를 하자 막판에는 법안 이름도 규제자유특구로 바꿨다. 규제프리존의 한글 표현!

95쪽 140여 개 조항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법안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든 국회 입법 절차를 통과했다. 문재인이 백두산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에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되고, 문재인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할 무렵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됐고, 성남공항에 착륙할 때에는 본회의에 상정됐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때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그 신속함과 용의주도함을 보건대, 정상회담 일정을 십분 활용한 국회 일정이었다. 또, 규제프리존법 처리에 항의하는 사람들만 선별해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그래서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규제프리존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회 정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청부입법업자 경쟁? ‘대기업청부입법’이라서 반대한다더니, 박근혜에게 청부한 입법은 반대하고, 문재인에게 청부한 입법은 통과시키는 민주당

반면, 재벌들은 문재인 정부한테서 규제 완화 선물을 받았다. 이 자들은 박근혜 정부에게 규제프리존법 입법을 청부했다. 그 숙원을 문재인 정부가 들어 줬다.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시절 추진된 대표적인 악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영리화를 비롯해 공공서비스 민영화·영리화를 추진할 때마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 절차를 번거롭게 여겼다. 그래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 한 번에 수백 개의 규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법률을 원했다. 이 법들은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되는 상위법으로 국회를 한 번만 통과하면 이런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규제프리존법은 “우선 허용, 사후 규제”라는 대원칙을 두고 있다. 일단 시행해 보고 나서 안전 등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어떤 규제를 할지 생각해 보겠다는 극도로 무책임한 법이다. 안전과 공공성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관점을 이토록 분명하게 표현한 법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다른 법률에 규제가 명시돼 있는 경우에도 사업을 하려는 기업주가 스스로 안전성을 증명하면 일단 사업을 허용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라돈 침대 사건, 각종 식품 안전 사고 등은 이런 방식이 낳을 끔찍한 결과를 보여 준 사례들이다. 검사 결과 보고서를 아예 대놓고 조작한 경우도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규제의 사각 지대에 숨어 사업을 추진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규제프리존법은 이 사각 지대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아직 안전성을 충분히 증명할 수 없는 신기술 도입의 경우에도 일단 허용한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나 드론을 이용한 운송서비스를 시작하려 한다면 사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꼼꼼히 따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아직 자율주행 자동차에 적용되는 자동차 보험도 없다. 그러나 규제프리존법은 이런 대책 없이도 일단 사업을 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병원들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정 늘려 주는 의료 영리화 조처, 전력산업의 부분 민영화, 가스·건축·도로·소방 등 안전과 직결된 규제 완화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규제 완화 조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야말로 기업주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문재인도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이 법을 “적폐”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를 “혁신 성장”과 “민생”을 위한 법이라며 통과를 주문했으니 문재인이 존중하고 편들려 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명확해진 셈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과 노동·사회 단체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이 법을 반대해 왔다. 또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적폐를 계승하려 한다면 문재인 정부에 맞서 투쟁에 나설 것임을 거듭 밝혀 왔다.

문재인은 남북 유화 국면을 이용해 친기업 친시장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 등 제국주의 간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들의 합의가 얼마나 이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이용해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요구와 투쟁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으며 친기업 친시장 행보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정치) 투쟁을 해야 한다. 문재인의 친기업 정책과 규제프리존법이 낳을 온갖 위협,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함께 싸우자.

2018년 9월 20일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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