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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와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 촉구 결의대회(5.26)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역에서 단식 37일째를 맞는 이시우 사진 작가의 석방과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는 결의대회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주최로 열렸다. 이번 결의대회에는 민주노동당 중구, 중랑, 종로, 성동, 서초, 서대문 지역위와 학생위원회의 당원들을 비롯해, 다함께, 반미여성회, 애국학생연대, 서총련과 서대련, 나눔문화 회원들 300여명이 참가했다.

오종렬 전국연합의장은 이시우 작가는 “분단의 아픔, FTA로 민중에게 어떤 고통이 있을지를 표현한 것 뿐”이라며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이해삼 최고 위원은 이번 탄압은 공안세력 밥그릇 지키기의 일환이라고 규정했고 이번 대선에서 “FTA도 중요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의제로 삼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자는 제안을 했다.

한편, 다함께 활동가이자 민주노동당 당원인 전지윤은 “6월 항쟁 20주년을 앞두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20년이 지난 지금 재현드라마 찍듯이 재현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는 FTA와 파병, 비정규직 확대, 그리고 정권연장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FTA 운동에 대한 탄압과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 기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의 국가보안법 탄압이 “전두환 아이큐도 국가기밀이라던 군사독재정부와 다를 것이 뭐있는가” “열화우라늄탄에 대한 사진은 범죄에 대한 기록들이고 이런 활동은 처벌받을 것이 아니라 보상받을 일”이라고 했다. 이어 2004년 노무현의 말은 “국보법 칼날이 상할까 고히 박물관에 넣어 놓고 언제든지 사용하자”는 말이었다며 “FTA체결에 쏟아부은 노력 10퍼센트만 있었어도 10번은 폐지됐을 것”이라는 재치있는 말과 맹렬한 성토로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계속해서 노무현에 대한 배신감과 비난의 발언이 이어졌다. 문정현 신부님은 “국보법을 잊고 살았다. 수염을 2000년인가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 사제단 농성을 하면서 기르지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를 회고해 보면, 한나라당도 7조 고무찬양은 양보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국보 폐지 내지 개정은 가능했는데, 이 바보같은 정권이 하지 못했다. 한다는 얘기에 박물관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믿었다. … 2001년에 국보법 철폐 싸움을 계속했어야 했다. 당시 노무현 당사자를 만났는데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을 내리라고 생존권을 위해 자주를 희생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생존권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무현은 거짓말쟁이다.“

이 날 집회에는 예술과 창작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에 항의하는 사진과 대학생들도 참가했다. ‘창작의 자유와 이시우 작가 석방을 위한 전국사진과 학생대책위’의 한 대학생은 “DMZ, 주한, 주일미군기지에 대한 작품 2천통의 필름이 압수되고 그 중 1천통이 훼손되었다. 사진은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찍는 것이다. 이것을 악법으로 가로막는 것은 분노스럽다. 이시우 작가의 한 달 넘는 단식을 보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전국 사진학과와 사진동아리에게 대책위 구성을 제안했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사진전공생의 서명과 탄원서를 받고 모금운동을 진행중이다. 또한 강연회 계획도 잡고 있다.” 하고 운동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면회를 다녀오느라 집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이시우씨 부인 김은옥씨의 발언이 있었다. 이시우 작가가 잘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작한 그녀의 발언은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힘찬 연설이었다.

“필름 원판을 훼손하면서 이시우 작가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 노무현 정부의 공안 당국에 감사하다” “남편은 안에 있지만, 나는 밖에서 남편의 뜻에 따라 2007년을 국가보안법폐지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결의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이 날 김은옥씨는 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웃음을 잃지 않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모자의 모습은 참가자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힘차게 벌여나갈 수 있겠다는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시우 작가 석방, 보안수사대 해체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명동을 거쳐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후 이후 투쟁을 결의하고 대회를 마쳤다.

사진 성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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