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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참사 원인 은폐:
대통령 면피 위해 직위 낮은 군인들을 속죄양 만드는 윤석열 부패 문제

5월 2일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관련 수사 외압에 대한 특검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표결에 반대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통과시켰다.

채수근 상병(당시 일병)은 수해 복구 지원 과정에서 무리한 작업 지시로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그의 사망 책임을 규명하는 수사에 대한 상부의 외압 의혹을 다루는 것으로,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사령부 등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대통령실은 격렬히 반발하고,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공언한다.

윤석열은 군 사망 사건에는 군에 수사권이 없으므로 수사 외압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개정된 법은 군에 대한 광범한 불신 때문에 해당 사건들의 재판을 군사법원이 아니라 민간 법원에서 하도록 한 것이다. 경찰·검찰이 수사·기소를 맡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일어난 범죄를 파악해 그 혐의와 피의자를 특정해 경찰에 넘길 의무는 여전히 군에 있다.

여론의 압박 때문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을 수사 중이다. 그런데도 특검법이 광범한 지지를 받으며 통과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수사기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대중의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불안한 마음으로 군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자 유가족에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

수사 외압을 통한 대통령의 사법절차 방해는 그 자체만으로도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중대한 권력형 부패 범죄이다. 하지만 채 상병 사망 사건의 본질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애꿎은 사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계급 문제다. 또한 강제로 군에 온 평범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에 어떤 권력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계급 문제다.

채 상병 사망 책임과 진상 규명 회피·은폐 의혹의 정점에 윤석열이 있다

사건 당시 국내에서는 곳곳에서 수해 참사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순방 공식 일정을 마친 윤석열은 즉시 귀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기습 방문해 전쟁 지원을 약속했다. 수해 대처보다 서방 제국주의 지원을 우선한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당장 해야 할 일을 팽개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사이에 수해 피해는 더 커졌고, 여론은 더 악화됐다. 충북 오송에 이어 경북 예천까지 수해 참사가 연달아 터지자, 정권 핵심부는 대통령 책임론을 희석시키려고 수해 복구 지원에 군 사병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이런 목적을 잘 알기에 당시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은 충성심을 과시할 겸 언론에 ‘그림이 잘 나오도록’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된 사병들에게 위험천만한 입수 작업을 명령한 것이다.

홍수로 지반이 약화됐고 급류도 여전히 흐르는 내성천에 사병들은 구명조끼도 없이 투입됐다. 급류에 고무장화를 신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내부 건의도 묵살됐다. 그나마 안전 조처로 서로 손잡고 횡대를 지었지만, 사단 지휘부는 손을 떼고 간격을 더 벌리라고 지시했다.

이시원

참사 이후 수사 국면에선 대통령실 지시하에 국방부, 해병대 등이 진실과 책임을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이 과실치사 책임자라는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는 해병대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고, 유가족들에게까지 전달됐으며, (규정대로 경찰에 넘기기 전) 언론 브리핑도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수사 결과 브리핑이 예정된 지난해 7월 31일 오전, 윤석열은 대통령실 외교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지휘관에게 책임 묻는 것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 직후 윗선에서 언론 브리핑을 취소했다. 그리고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사령부→박정훈 대령 순으로 임성근을 범죄 혐의자에서 빼고 경찰에 넘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박정훈 대령은 이 지시들이 “VIP(대통령)의 뜻”이라는 답을 해병대 사령관 김계환에게서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훈 대령이 수사 결과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넘기자, 다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나서서 초법적으로 수사 결과를 회수하고,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수괴죄로 기소했다. 박정훈 대령은 지금도 항명죄로 군사법원에서 재판받고 있다.

최근 공수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인 이시원이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재은이 수사 결과를 돌려보내라고 경북경찰청에 통화한 직후였다. 유재은은 임성근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유재은에게 전화한 이시원은 2012년 시작된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그는 증거 조작 지시 당사자였다. 하지만 검찰의 감싸기로 미미한 징계만 받았었다.

그런데 윤석열이 취임 후 그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중용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정권 연장과 통치 안정에 이용해 먹으려고 애먼 탈북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범죄에 앞장섰던 자를 정권의 “공직 기강” 담당자로 임명한 것이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과정을 들여다보면, 박정훈 대령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윤석열의 이시원 임명에 담긴 참뜻을 알아채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는 의미의 기강은 전혀 없고, 약자를 희생시켜서라도 권력자에게 충성하고 무도한 지시에도 상명하복하는 ‘기강’은 발휘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상 규명 회피와 은폐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왜 윤석열은 공수처 수사가 개시된 후 육군 출신 이종섭을 별 연관성도 없는 호주 대사로 임명해 해외로 내보내려 했을까? 왜 이시원이 직접 나섰을까?

채수근 상병의 억울한 죽음, 수사 외압, 수사 외압 관여자 엄호, 이 세 국면 모두에서 핵심 행위자이자 의혹의 최종 수렴점은 바로 윤석열이다. 특검이 정당한 이유다.

정치 위기

생계비 위기에 맞선 저항, 개혁을 위한 투쟁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면, 총선 참패 후 위기가 더 깊어진 윤석열의 구명조끼도 벗겨질 수 있다. 정치 위기가 더 심화되면, 각종 의혹들의 내부자 입단속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민주당과 대화하는 시늉을 해야 했다. 이에 응해 민주당은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 문제연금 개악에서 협조할 수 있음을 내비쳤고, 이태원참사특별법은 내용을 후퇴시켜 국민의힘과 합의했다. 비록 채 상병 특검도 통과시켰지만 말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의 위기를 지배계급에게 인정받고 개혁 생색도 내는 기회로 삼으려고 이런 화전 양면 작전이라는 책략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관되지 않은 태도일 뿐이다. 특검법만 통과시키면 끝일까?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할 텐데 말이다. 그러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그저 대중을 박수부대로만 놔둘 것인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채 상병 사건의 진실 규명에 앞장서 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더불어민주연합 비례후보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가 당선됐다면 채 상병 특검에 훨씬 상징적 무게가 실렸을 텐데도 말이다.(진보당은 비판 목소리를 냈지만, 단결이 우선이라며 결국 순응했다.)

노동운동 지도부들이 민주당과 개혁입법 공조를 중시하며 대중 행동 활성화하기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