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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판 서평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인들은 아슈카르가 전망하는 것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스라엘 국가 변화의 한계에 대한 내용을 2024년 3월 22일에 추가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질베르 아슈카르 지음,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옮김, 리시올, 118쪽, 12000원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 전쟁의 이례적 성격과 그 심각성을 조명하는 책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질베르 아슈카르 지음,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번역, 리시올, 2024)이 나왔다.

저자인 질베르 아슈카르와 번역자가 강조하듯이 이번 이스라엘의 학살 전쟁은 이전까지 이스라엘이 저질러 온 만행을 훨씬 뛰어넘는다.

“나크바 ⋯ 당시 팔레스타인 거주 아랍인 130만여 명 중 1만 1000명 이상이 살해됐다. 가자에 자행된 이번 공격을 보자. 7주가 채 지나지 않은 현재 가자지구 주민 230만여 명 중 최소 1만 5000명이 사망했고, 거주민 절반 이상이 북부에서 남부로 쫓겨났다.”

아슈카르는 이 인종 학살 전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서방 언론들과 정부들, 이스라엘을 돕는 이집트 정부의 행태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금 바이든과 네타냐후가 불협화음을 빚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하마스의 저항을 제압한 이후의 로드맵을 둘러싼 것이고, 이 전쟁은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아슈카르는 지적한다.

아슈카르는 이번 전쟁이 ‘나크바’ 완수 계획을 담은 이스라엘 정보부 문건과 많은 부분 일치하는 것에 주목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항의 운동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기아에 직면하고, 피란민 집결지인 라파흐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공격이 임박한 지금, 이 학살 전쟁의 심각성과 국제적 항의 운동의 시급성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다.

하마스의 오판?

한편, 아슈카르는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도덕적으로 규탄하기는 거부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훨씬 의심스럽다”고 본다. 그 공격이 이스라엘의 무지막지한 보복을 초래하고, 네타냐후에게 가자지구를 점령할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월 7일 공격이 하마스의 종교적 비합리성에서 비롯한 오판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7 공격이 모든 아랍인과 무슬림의 참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하마스의 기대는 딱히 종교적이랄 게 없다. 세속적인 파타 지도자들도 초창기에 게릴라 투쟁을 하면서 똑같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옮긴이가 해제에서 지적하듯이) 10월 7일 공격은 하마스만의 것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의 모든 저항 세력들이 “합동 작전 본부를 꾸려 최소 2년 전부터 기획한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노골적인 배신 움직임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이제 없는 셈 치겠다는 처사였다.

그러나 10월 7일 공격 때문에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다시 거리를 둬야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자국 대중의 분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슈카르는 이런 정치적 효과를,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중동 정치와 서방 제국주의에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을 다루지 않는다.

이런 약점은 아슈카르가 제시하는 팔레스타인 해방 전략과 관련이 있다. 아슈카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폭력 대중 투쟁”으로 국제 여론과 이스라엘 사회 내의 지지와 압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열쇠라고 본다.

아랍 세계 자체에서 제국주의 지배 질서에 맞선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아슈카르는 10월 7일 공격이 중동 정치와 서방 제국주의에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을 다루지 않는다 ⓒ출처 Hamas Media Office

아랍의 반란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기

여기에는 아랍 혁명의 패배에서 비롯한 비관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아슈카르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그 일대의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혁명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과제로 여기지 않는다.

애초에 아슈카르는 시온주의 국가를 해체한다는 목표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2009년 인터뷰에서 아슈카르는 그런 목표를 현실적 평가에 기초하지 않은 “최대주의”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이스라엘을 철수시키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제시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아슈카르는 “한 국가 방안이냐 두 국가 방안이냐를 둘러싸고 ⋯ 운동 내 논쟁은 부적절”하고 그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결정할 일이라면서,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철수하는 것을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합의된 요구의 하나로 제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얘기다. 그러나 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면서도 그 민족 운동 지도자들의 전략·전술을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다.

아슈카르는 중요한 쟁점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 방안’과 ‘두 국가 방안’을 둘러싼 논쟁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시온주의 국가를 분쇄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점진적 개혁으로 시온주의 국가를 개혁할 것인지 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

물론 ‘한 국가 방안’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그랬던 것처럼 기존 국가를 강제로 해체하지 않고 개혁해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지금은 (1990년대 초처럼) 러시아가 붕괴한 것도 아니고, 중국이 새로 떠올랐고,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므로, 미국 등 서방이 양보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철수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과 팔레스타인 바깥의 수많은 난민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물론 아슈카르는 1967년 이전 국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단계론적 전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시온주의 국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진척시킬 어떤 발판도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결국 1967년 체제 이전이든 이후든 시온주의 국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따라서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라는 목표를 무기한 연기(실천으로는 기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계적·점진적 접근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단계적 접근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국가와의 협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무장 투쟁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파타 등 옛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바로 그런 길을 걸었다.

물론 아슈카르는 궁극으로는 시온주의 국가가 어떻게든 끝장나야 한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단계론인 데다) 아슈카르는 그것이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그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비폭력 대중 투쟁”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관계있다. 그런 방식의 투쟁이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여론을 이끌어 내고 시온주의에 대한 도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슈카르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를 그런 사례로 제시한다.

그러나 인티파다를 비폭력 투쟁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비록 제한된 수준이지만 그 항쟁은 폭력을 수반해야 했다.

또한 제1차 인티파다가 분명 위대한 항쟁이었지만 결코 혁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제1차 인티파다 자체는 기존 국가 기구의 존재를 위협하지 못했다.

제1차 인티파다가 이스라엘 내에서 낳은 정치 위기는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배 전략을 둘러싼 양극화였다. 제1차 인티파다를 포함한 이후의 인티파다들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에서 극우 정치 세력이 성장했다.

시온주의에 대한 도전을 이스라엘 내에서 기대할 수 있는가

아슈카르는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 지지를 팔레스타인 해방 전략의 한 기둥으로 제시하지만, 어째서 이스라엘 정치가 장기적으로 극우화해 왔고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를 기대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 돼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치의 장기적 극우화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그것은 식민 정착자 국가라는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내쫓아서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내쫓지는 못했다.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도 주변국에서 계속 귀환을 꿈꿨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회의 존속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통제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권을 계속 부정하는 것에 달려 있게 됐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들은 75년 넘게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극심한 탄압과 억압도 그 저항을 꺾지 못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와 2021년 ‘단결 인티파다’는 ‘평화 프로세스’라는 기만책과 온갖 이간질 시도도 먹히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처럼 시온주의자들 사이에서 현 상황이 유지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질수록, 인종 학살의 완수를 해결책으로 주장하는 극우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내부로부터의 파열”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느 자본주의 나라와 다른 예외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사회·경제의 모든 측면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지배하고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구실을 하는 것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하이테크·군수 부문이 경제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투자와 고용, 출세의 기회가 모두 군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노동계급에게조차 팔레스타인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데 동참할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다.

아슈카르는 제1차 인티파다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묘사하지만, 제1차 인티파다는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유의미한 흐름을 이스라엘 내에 남기지 못했다.

제1차 인티파다 기간에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그 항쟁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동참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탄압에 반대한 사람들도 극소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평화 단체 ‘피스 나우’가 조직한 시위는 1982년 레바논 전쟁 때 그 전쟁에 반대해 벌인 시위보다 훨씬 작았다.

물론 이스라엘은 지독하게 분열돼 있는 사회이고, 그 사회 안에는 서로 충돌하는 여러 정당들이 있다. 특히, 그 분열은 상이한 시기에 이스라엘로 유입된 유대인 이민자 집단들 사이의 상이한 처지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점령과 강탈에 대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이들의 갈등은 팔레스타인 지배 전략과 그 지배에서 오는 이익과 특권의 배분을 둘러싼 것이라고 봐야 한다.

흔히 ‘좌파’로 분류되는 이스라엘 노동당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한 강탈과 지배 자체에 결코 도전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핵심 건국 세력이었다. 2022년의 ‘중도 좌파’ 연정하에서도 인종청소 강화 추세는 계속돼, 예컨대 전년 대비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살해 건수가 85퍼센트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네타냐후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그 안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는 전무했다. 그리고 그 시위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베니 간츠는 과거 가자지구 공격을 주도한 자이고 현재 전시 내각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내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의 열쇠를 찾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제1차 인티파다의 교훈

한편, 제1차 인티파다에 대한 논의로 다시 돌아가자면, 제1차 인티파다는 아슈카르가 주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위협이 됐다. 바로 중동 전역에서 연대 시위를 촉발한 것이다. 특히 이집트의 시위는 친미 독재 정권에 맞선 전국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운동들은 당시 냉전에서 막 승리한 미국이 중동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나머지 중동 동맹국들을 결집시키는 데 심각한 차질을 줬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일절 협상을 거부하던 이스라엘을 미국이 협상장으로 끌고 와 오슬로협정을 맺게 한 것이다.

즉, 인티파다의 교훈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중동 전역의 반란에 도화선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 아랍국 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크게 억압받는 집단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아랍 나라들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밀접하게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슈카르는 “비폭력 대중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구실을 사실상 국제적 지지 여론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구실을 할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투쟁은 결국 이스라엘 국가와의 대결로 나아가야 하는 만큼 “비폭력 투쟁”을 중요한 요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슈카르가 결정적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물론 아슈카르의 지적처럼 아무리 용맹한 팔레스타인인 무장 투쟁도 힘의 절대적 열세로 이스라엘 국가를 타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랍의 반란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 자리 잡게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은 오판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평가돼야 한다.

분명 하마스의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하마스는 무장 투쟁으로 주변 아랍 정부들을 압박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제국주의 지배 질서 자체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려 한다. 예컨대 하마스는 현재 요르단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요르단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마스의 무장 투쟁이 이스라엘과 서방 그리고 서방 제국주의의 최근 위기를 드러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투쟁이 아랍 세계의 반란을 부추기기를 바라야 한다.

현재 아랍 세계에서 혁명적 운동이 재부상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른 나라, 특히 이스라엘의 여론을 움직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랍 세계 반란의 도화선이 되는 것,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망 있는 길일까?

이스라엘은 장기적 우경화의 길을 걸어 왔다. 반면, 현재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무슬림들과 아랍계 청년들은 급진화를 이끄는 핵심 집단이다. 2010년대 말에 수단, 알제리, 이라크, 레바논 등지에서 일어난 항쟁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이 여전히 정치적 격변의 현장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슈카르는 이스라엘보다는 아랍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더 급진적이고 더 투쟁적인 전망 속에 스스로 자리잡아야 한다. 현재 그의 전망은 서방의 급진적 지식인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