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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영국 노동당 예비 내각의 경제 정책은 저가형 바이드노믹스

런던 시티대학교가 매년 여는 메이스 강연은 경제계 고위 인사들이 자신들의 지적 역량을 자랑하는 자리이다.

1984년 이 자리에서 나이절 로슨은 마거릿 대처의 재무장관으로서 집행하게 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제시했다.

1999년 같은 자리에서 당시 노동당 정부의 재무장관인 고든 브라운은 로슨 정책의 기본 뼈대를 사실상 수용하면서 로슨의 강연을 어설프게 재탕했다.

지난주[3월 20일] 연사는 레이철 리브스였다. 리브스는 수개월 안에 치러질 총선에서 노동당이 이기면(현재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재무장관이 될 사람이다.

그간 노동당의 리브스나 [당대표] 키어 스타머, 예비내각의 다른 성원들이 끔찍하게 보수적인 경제 발언을 잇따라 해 온 것에 비해, 리브스의 이날 강연 내용은 좋은 의미에서 의외인 측면이 있었다.

그 강연에서 리브스는 침체된 영국 경제의 현실을 인정했다. 그녀는 영국 경제가 “불안정의 시대” 위에 표류하고 있다면서 이런 시대의 특징으로 “정체된 성장, 나아지지 않는 생활 수준, 정치적 혼란이 무엇보다 두드러지고, 또한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으로는 세계적 충격, 점증하는 지정학적 긴장, 기후변화와 넷제로 전환이라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에 토니 블레어가 경제 세계화를 경솔하게 예찬했던 그 자리에서 리브스는 “우리가 아는 세계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비록 리브스는 칼 폴라니, 조앤 로빈슨부터 애덤 투즈까지 좌파적 경제학자들을 거명했지만, 그녀가 제시한 정책의 뼈대는 로슨과 브라운이 제시했던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좇아 정부의 임무는 통화·재정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공공 지출과 국가 채무가 너무 빠르게 늘지 않도록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 성장과 높은 고용을 낳는 것은 “공급 측면”이라면서, 기업 수익성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고, 해고를 더 유연하게 하고, 더 쉽게 착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처와 로슨이 집권하던 시절에 이는 노조 악법을 통해 조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광원 파업을 분쇄하는 것을 뜻했다.

브라운의 경우에는 노조 악법은 유지하면서도 노동자들을 교육·훈련시켜서 생산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브라운도 전임자 로슨처럼, 경제 성장을 위해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금융부문”(리브스의 표현)에 기댔다.

그 결과로 2007~09년 세계 금융 위기가 일어났고 [재무장관에 이어 총리가 됐던] 브라운은 총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또한 오늘날 “불안정의 시대”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리브스는 통화·재정 안정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보수당 정부들 하에서 그것들이 무너졌다고 했는데,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리브스는 경제 성장과 안정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공급 측면” 정책들을 펼치려면 “능동적 국가”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를 “안정경제학”이라 부르면서 “큰 정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고 전략적인 정부”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브스가 그런 정책에 무슨 이름을 붙일지는 자유지만, 그녀가 제시한 전략은 ‘바이드노믹스’와 진부하게 닮아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경쟁력을 키우고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빌리고 또 지출했다.

리브스는 “안정경제학”이 사장과 노동자 모두와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이고, 선별적인 공공 지출로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적 경제학자 리처드 머피는 리브스의 강연을 두고 “타락”이라고 비난했다.

“리브스가 사실상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업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다른 누구의 이익도 깡그리 짓밟을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련한 블레어주의자 피터 만델슨은 리브스의 전체적 접근 방식을 높이 사면서도 이렇게 경고했다. “노동당이 노조 개혁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기업들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리브스 강연에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리브스는 2010년대 [보수당 정부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시행한 긴축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정부가 남긴 높은 수준의 공공 지출과 조세제도를 물려받을 것이다.

리브스가 통화·재정 안정성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대기업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약 그 약속을 고수한다면, 성장을 촉진할 자금이 수중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노동당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면서 초기에 야심차게 내세웠던 “녹색 성장 계획”이 급격하게 쪼그라드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본 바 있다. [관련 기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집권도 하기 전에 배신하는 영국 노동당’]

저가형 바이드노믹스로는 스타머 정부가 사장과 노동자를 모두 기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스타머 정부는 둘 중 누구를 위할지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게 누구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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