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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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방침 철회하라

2006년 12월 4일

[성명]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방침 철회하라

지난 8월 24일 노무현 정부의 경찰은 강정구 교수가 쓴 글을 문제삼아 강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찰이 법의 심판대에 올린 글은 강정구 교수가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글이다. 이 글은 맥아더 동상 철거를 지지하며 쓴 것으로, “미국과 맥아더를 6·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보은론”을 펴는 우익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 글에서 강정구 교수는 맥아더가 한국전쟁 “사흘 만인 27일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미국 정부에 개입을 요구하고, 곧바로 소사 등에 폭격을 감행한 전쟁광이었다”고 주장한다.
맥아더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폭로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2주밖에 안 된 시점에서 핵폭탄 사용을 촉구했고(≪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381쪽 참고), 소련과 중국의 영토는 침범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제한전 개념에 반발하다가 결국 전쟁중 해임당한 인물이었다(박태균, ≪한국전쟁≫ 157쪽 참고). 미국 지배자들의 눈에도 그는 제거돼야 할 못 말리는 전쟁광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강정구 교수의 글에서 특히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구절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이 없었다면 민족의 분단과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강정구 교수의 결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시각은 미국내 베트남전쟁 반대 정서에 힘입어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전통주의 관점에 반기를 든 수정주의가 부상하면서 세계 역사학계의 한 흐름이 됐다. 세계적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기념비적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논증했던 것은 바로 분단과 전쟁의 기원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사상을 표현할 자유

지금 노무현 정부의 경찰은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책들, 세계적인 학술 연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주장을 “북한을 찬양·고무한 죄”로 단죄하려 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정권의 성격, 미국과 소련 점령군의 역할, 전쟁의 성격 등등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토론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19항)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권리는 간섭 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어떤 방도를 통해서나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고 지식과 사상을 찾고 받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국가보안법 7조는 세계인권선언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완전 부정한다. 우익 단체들은 강정구 교수에 대한 고발장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인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반역자 강정구를 … 고발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헌법(19조 사상과 양심의 자유/ 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최근 진중권 교수는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을 강정구 교수만이 한 게 아니라며 국가보안법의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한국 역사상 통일을 위해 전쟁을 결심했던 사람으로 두 김씨가 있으니 김유신과 김일성이다.’ 이 말을 누가 했을까요? 정답은 월간조선 조갑제 전 사장입니다. 대표적인 우익인사인 이 분은 김일성도 한 통일전쟁 결심을 왜 대한민국은 하지 못하냐고 질타하더군요.”
그러나 조갑제는 처벌은커녕 처벌 논란에 휩싸인 적도 없다.
맑스가 지적했듯이, 이중잣대는 신념단속법의 특징이다. “[신념단속법은] 분리의 법률이며, 분리의 법률은 죄다 반동적이다. 그것은 결코 법률이 아니며 하나의 특권이다. 어떤 사람이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다른 사람은 행해도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 그의 선량한 생각과 그의 신념이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구 교수는 ‘만경대사건’ 이후 “자기검열이라는 정신적인 괴롭힘”을 겪어 왔다. 강정구 교수가 누구에게 신체적 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단지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잘 보여 준다. 강정구 교수가 처벌된다면 노무현 정부는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반격에 맞서 방어 전선을

우파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강정구 교수를 마녀사냥함으로써 X파일 폭로로 코너에 몰린 위기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그들은 반격에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의 칼럼니스트 김대중은 강정구 교수의 글과 X파일 사건을 연결시켰다. 그는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북한과 친북 세력이 자신감을 얻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작금에 폭로되고 있는 재벌·언론·정치권력의 유착을 보여주는 도청 내용들[이] 좋은 배경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8년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을 빌미로 최장집 교수(당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가 마녀사냥당했을 때, 그것은 총풍·세풍·사정에 대한 반격이었다.
2001년 강정구 교수가 만경대사건으로 고초를 겪었을 때, 그것은 홍석현 구속으로 이어졌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반격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공안세력의 중앙기관지답게 <조선일보>가 강정구 교수 처벌을 요구하는 포문을 열었고(7월 29일), 닷새 만에 한나라당이 “사법기관이 수사 대상이 되는지 검토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분위기를 살렸다(8월 3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 부분 브리핑). 얼마 지나지 않아 사법처리 검토설이 흘러나왔다. 자민련은 이것이 “국민여론 무마”용이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고(8월 18일), 나흘 뒤 우익단체들이 강정구 교수를 고발했다.
우익들은 강정구 교수와 함께 노무현 정부도 은근히 겨눴다. 강정구 교수의 글이 실린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친노무현 인터넷 언론이라는 점이 이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우익들이 한 묶음으로 비난한다 해서 노무현이 강정구 교수와 한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 진영에 퍼져 있는 이런 소박한 기대(개혁 정부의 의중을 읽지 못하거나 개혁에 저항하는 공안세력의 구태가 문제라는 식)가 허망한 것임은 역대 ‘개혁’ 정부에서 반복해서 드러났다. 오히려 역대 ‘개혁’ 정부들은 진보세력 처벌을 용인함으로써 우익 앞에 자신의 색깔을 입증하려 애썼다.
8월 23일, 노무현은 맥아더 동상 철거가 “굉장히 해로운 일”이라며 “역사는 역사로서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게 좋다고 강정구 교수와 선을 그었다. 경찰이 강정구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것은 노무현이 이 발언을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지금 강정구 교수를 방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공격은 정치위기에서 빠져나오려는 지배계급의 반격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며 노동자·민중운동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야비한 흑색선전

자민련은 성명에서 강정구 교수가 “호화주택에 거주하며 자식은 미국에 유학까지 보(낸) … 이중적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우익들은 민중운동단체 게시판에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이런 식의 비난을 올림으로써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긁어모은 우익 정치인들의 위선에 대해서 지금 얘기할 지면은 없다.
그들은 <조선일보> 필기시험에 2등으로 붙고도 면접에서 떨어진 강정구 같은 인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독재권력의 하수인을 추구할 때 청년 강정구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빈부격차’라고 답해 낙방의 쓴잔을 ‘자초‘했다.
강정구 교수는 1988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학술 분야에서 기여했을 뿐 아니라 실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만경대사건’ 뒤에도 노동조합과 대학 등에서 열심히 강연했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 ‘다함께’ 같은 단체의 ― 활동가들과도 우호적으로 논쟁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운동가였다.
설사 자민련과 인터넷 게시판의 비난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강정구 교수 방어를 머뭇거려야 할 이유가 전혀 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 살든 자식이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해야 한다.
강정구 교수를 방어하는 것은 한국전쟁에 대한 그의 주장에 동의하느냐 여부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만약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방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강정구 교수 주장에 대해 반론할 자유도 위협당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좌파 진영 내의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 사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에 반대해 투쟁해야 한다. 저들이 반격에 성공해 코너에서 빠져나온다면 그 다음 차례는 당신일 수 있고, 노동자·민중운동 전체일 수 있다.

2005년 9월 2일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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