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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내분이나 일삼는 쓸모없는 정치세력인가?, 등의 민노당 보도를 보며

2007년 12월 4일

대선을 앞둔 요즘 민주노동당을 호의적으로 다루는 언론 보도를 보기는 정말 힘들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표현도 쓸 수 없을 정도다. 조·중·동과 그 비슷한 논조의 언론들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않겠지만, 이들과 선을 그어 온 몇몇 언론들마저 그렇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언론들이 민주노동당을 다루는 방식은 둘 중 하나다. 아예 무시하면서 거의 보도하지 않거나, 보도할 때는 그 존재의 미미함을 강조하고 정파 갈등의 폐해를 부각하는 식이다. 특히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보도는 민주노동당이 내분이나 일삼는 조직이라거나 "NL" 당이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당내 한 의견그룹의 회원인 필자도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삼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코리아연방공화국 논쟁에 부쳐, <맞불> 66호). 특정 정파의 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을 바람직한 당 운영으로 보지 않고,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무상의료·무상교육·1가구 1주택 등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정책들을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 속에서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그러나 "코리아연방공화국" 국가 비전을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권영길 후보의 선거 운동도 지지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일부 정책에 비판적이면서도 선거운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하는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에는 많다.
 
몇몇 언론들이 부풀려 부각하듯이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선거운동 못 하겠다"는 입장인 것도 아니고, 따라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이 특정 정파의 선거운동으로 의미가 퇴색한 것도 아니다.
 
일각의 비판처럼 권영길 후보가 소위 민생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노동자와 저소득 소외계층"을 대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다. 권영길 후보는 첫 유세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과 함께 했을 만큼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하고 있다. 부유세를 통한 소득재분배도 강조한다.
 
그동안 언론들은 ’맨날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타령이냐’며 마치 민주노동당 주장이 진부해서 보도할 것도 없다는 듯이 취급하더니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을 다룰 때는 민생 쟁점이 뒤로 밀린다는 비판을 집어내 인용한다.
 
물론 심지어 당 지도자라는 분들이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범여권 또는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언론에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런 비판을 인용해 지도부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나오는 민주노동당에 무슨 비전이 있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지는 그 언론들의 보도도 공정하지는 않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우고 있는 여러 진보적 정책들보다 정파 갈등에 더 큰 보도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가벼운 흥미 위주 보도 행태이거나 민주노동당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쪽을 두둔하며 분열을 부추기는 인상마저 든다.
 
물론 민주노동당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내 좌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일관성이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타협해 아쉬움을 남긴 쟁점들도 있었고, 부적절한 정책들도 있다. 북한 정권에 무비판적인 듯한 지도부 내 다수파의 태도도 약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의의가 없는 것처럼 폄훼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대중정당이다. 오랫동안 사용자들의 정당에 정치를 의탁해 왔던 노동자들은 1987년 투쟁 10년 만에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착수해 민주노총 기반의 당을 건설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6일 이번 대선 후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가 85.7퍼센트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 뒤를 이은 문국현 후보의 지지는 겨우 1퍼센트대였다. 지지 정당 결과는 더 높아 89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가장 선호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을 나타낼 수도 있고, 본격적인 계급투표이려면 단지 민주노총을 넘어 노동계급의 좀더 다수가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제공해야겠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영국에서도 노동계급은 세 번에 걸친 노동자 투쟁 ― 1880년대 말과 1890년대의 투쟁, 1910년부터 1926년 총파업까지의 투쟁, 그리고 1930년대 말과 제2차세계대전 기간의 노동쟁의 ― 을 거치고 나서야 집단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노동당에 투표하게 됐다. 물론 오늘날의 한국 노동계급은 훨씬 압축된 경험을 하겠지만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반전·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도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의의를 이루는 부분이다. 주요 후보들 가운데는 누구도 이런 가치를 표방하는 자가 없다. 정동영이 부쩍 왼쪽 깜빡이를 켜지만 고종석 씨 말대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왠지 그 자신도 제 말을 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국현은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집권하면 한미동맹을 더 강화하겠다고 했고, FTA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역사적·정치적 의의를 애써 외면하고, 내분이나 일삼는 조직이라거나 "NL" 당으로 취급하는 것은 불공정한 보도일 뿐 아니라 그 언론의 계급적 한계를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이제라도 그런 언론들은 정파 갈등보다는 민주노동당의 진정한 가치에 주목해 줬으면 한다.
 
그것은 사이비 개혁 세력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이 ’보수 내전’의 승자를 선택하는 것으로의 후퇴만 있는 게 아님을 알려주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다. 보수 언론이 아니라면 마땅히 이런 일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하영(’다함께’ 운영위원)

이 글은 필자가 11월 30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것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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