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입장]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는 최기영·이정훈 당원 제명 기도를 중단해야 한다

2008년 1월 31일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대위 대표는 임시당대회에서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통과시키려 한다. 우리는 이들을 동지라고 불러야 한다. 단지 같은 당원이라서가 아니라, 천대와 부당함과 착취에 맞선 우리 노동자 운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운동 동지라 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무턱대고 그를 방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최·이 두 동지가 누군가를 강간했거나 살인했거나 하는 따위의 일을 저질렀다면 우리는 그들을 제명하는 데 완전히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 석방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동지의 구속은 북한 핵실험의 여파 속에서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국정원이 내사중이던 사건을 서둘러 집중적으로 기획 조사해 터뜨린 사건이었다. 당시 자리 보전을 위해 부심하던 국정원장 김승규는 계속 언론에 정보를 유출했다. 전형적인 마녀사냥이었다. 마녀사냥은 “무언가로 비난받고 있는 특정 집단을 찾아내 벌주려는 시도로, 흔히 그들은 실제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단지 그들의 견해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곤 한다.”(콜린스 고급영어사전)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두 동지 제명 얘기는 바로 지난해 말부터 부풀려져 제기되고 있는 ‘종북주의’ 문제라는 마녀사냥적 맥락 속에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언론과 한나라당이 이 맥락 속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논평하고 있다.

그런데도 심 비대위는 두 동지 제명 사유가 북한 정권에 당직자 인적사항을 넘긴 것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이정훈 동지의 경우는 법원도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대법원에서 확정된 최 동지 판결문의 요약 발췌문을 대의원들에게 나눠주는 야비한 짓마저 하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백보 양보해 최기영 동지의 당직자 인적사항 유출 혐의가 설사 어찌어찌해 모종의 사실이 됐다손 쳐도 당직자 성향 조사 보고서는 대부분 ‘운동권 뒷담화’ 수준의 얘기들이다. 물론 보고서에 부정적으로 언급된 당원들의 경우 매우 불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억압적인 체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불쾌할 것이다.

연막

“그러나 이런 보고서가 우리 운동에 심각한 문제를 낳지는 않았다. 남한 지배자들을 이롭게 하지도 않았다. 지난 민중운동 역사에서 연대하지 말아야 할 세력을 진보적 세력이라고 보는 착각과 오류는 흔히 있던 일이다. 평등파 내 다수도 구소련 지배계급을 사회주의자들로 착각하고 추종해 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군사독재 시절 김대중이 일부 미국 지배자들과 남한 민주화운동 정보를 나누고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해서 그가 ‘미제의 스파이’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종류의 오류는 운동 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설득할 문제이지 국가 탄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 탄압은 오히려 진정한 토론을 막을 뿐이다.

“게다가 비대위의 태도는 엄연한 이중잣대다. 당원 정보 유출이 문제라면, ‘자율과 연대’ 회원인 필명 켄타우르스는 <조선일보> 인터넷 웹사이트에 ‘타도 주사파’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각종 당내 동향과 정보를 알린 바도 있다. 운동을 탄압하고 있는 남한 지배계급에게 정보를 유출한 것이 훨씬 더 커다란 문제일 텐데도 비대위는 이 당원을 문제 삼지 않는다. …

“당시 당 지도부는 최기영 씨를 직책에서 해임하고 대국민 유감을 표현했다. [그러므로] ‘편향적 친북당 이미지’는 당내 평등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 낸 성격이 짙다.

“‘종북주의’ 운운하면서 국가 탄압을 수용해 당권을 장악하는 데 활용하려는 것은 운동 진영을 분열시키는 재앙적인 태도다. 비대위가 [최·이 두 동지들을 제명하려는] 것은 민주노동당을 체제 내로 길들이려는 우파에 타협하는 것이자 당내 반대파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정병호·서범진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선거 유세문에서)

당직자 정보 대북 유출을 비난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국제적으로도 악명 높은 마녀사냥 도구를 이용한 남한 국가의 탄압 문제를 숨기고 당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기회주의자들의 교묘하고 능청스러운 연막 전술이다.

그것은 아쉬운 대선 결과의 책임을 당권 경쟁자들에게만 떠넘기고 다가올 총선과 이후 선거들에서 주류 사회의 환심을 사겠다는 기회주의적 선거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자주파의 주요 리더로, 비슷한 보안법 사건의 관련자인 김창현 전 사무총장의 비례대표후보 선정 저지를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심상정 비대위는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93년 전 독일사민당 급진파 지도자 칼 립크네히트의 말과 정반대로 주적을 북한 당국인 양 착각하고 있다. 비대위는 최·이 두 동지가 연루된 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당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훼손시키려 한 북한 당국에 엄중 항의하고 이후 북한은 남한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개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십만 명이 굶어죽고, 아동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는 반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지도자의 아들들은 스위스 등지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하고, 민주적 권리와 노동기본권도 용인되지 않는 사회를 노동자 정당이 비판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리라.

그러나 비대위는 오히려 남한 당국에 엄중 항의하고 민주노동당 운동에 대한 남한 당국의 개입 즉각 중단을 요구해야 했다. 두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고 보안법을 비난함으로써 말이다.
또, 북한보다 미국 제국주의 비난에 더 열을 올렸어야 했다. 노움 촘스키나 하워드 진, 브루스 커밍스 등 세계 유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가령 북핵 문제에서도,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긴 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임은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나 미국 언론인 존 페퍼 같은 자유주의자들도 지적하는 바인데, 민주노동당 비대위가 침묵하는 것은 전혀 좌파답지 않다.

사실, 심 비대위의 ‘공헌’은 민주노동당 내 PD(평등) 파들이 ‘좌파’라는 신화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8일 당 게시판에 올린 “‘종북’, 패권주의, ‘제2창당’론에 대한 다함께의 입장”에서 이미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 확대간부회의의 비대위안을 지지하는 것은] ‘자주파’에 반대해 일시적으로 뭉친 갖가지 이질적인 조류와 집단, 개인들이 제시하는 당의 미래에 대한 상이한 비전이 과연 무엇으로 판명나는지 대중에게 입증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로 3주 만에, 심상정 비대위를 지지하는 PD는 민중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다양한 변형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나고 대중에게 입증되고 있다.

1989년 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씨가 방북했을 때 당시 인민노련 등 대부분의 PD 파들은 이들에 대한 혹심한 마녀사냥과 국가 탄압에 맞서기를 회피했다. 물론 지금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말이다. 당시 인민노련 지도자 노회찬은 5년 뒤 김일성 조문 파동과 서강대 총장 박홍의 주사파 발언 파동 상황에서 우익과 공안세력의 마녀사냥에 추임새를 넣었다.

대체로 마녀사냥의 제물, 속죄양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매력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경우가 흔하다. 나치 박해의 생존자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유명한 시구(詩句)는 고통스러워 불확실해진 목사의 기억 때문에 몇 가지 상이한 버전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나치가 여호와의 증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 자신이 침묵했음을 후회하는 것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이나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친제국주의 국가가 문제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의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이나 민간인도 사상을 입히는 차량폭탄 공격 방법 등의 전술이 진정한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서방의 제국주의적 점령이 문제다. 알카에다는 매우 불쾌한 존재이지만 9·11 테러를 미국의 중동 억압과 수탈 문제에서 분리해 바라보면 엉뚱한 편에 서게 된다.

심 비대위는 자신이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는 건지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최일붕

이 글은 <맞불> 7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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