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서:
낙태한 여성을 기소한,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강력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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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임신 초기의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고소된 28세 여성을 기소처분했고, 법원은 벌금형을 내렸다. 이로써 작년 하반기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시술 의사 고발로 시작된 한국 사회의 낙태 논쟁은 남편의 고발로 고소된 한 여성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으로 절정에 치닫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낙태로 고발된 여성과 의사에 대한 유죄 판결이 증가하고 있고 처벌의 수위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로 기소되는 일 자체가 적었고, 기소가 되더라도 선고 유예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추세이다. 지난 9월에도 울산지방법원에서 이혼하기 전 여성을 낙태한 혐의와 청소년을 낙태한 혐의로 한 의사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현재 한 남자가 자신의 옛 여자 친구를 낙태했다며 고발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낙태 시술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 등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이처럼 또 다시 사법적 처벌을 가하는 것은 낙태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이중적 고통을 덮어씌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1979년 UN 34차 총회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에서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각국의 법적 조항들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후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받을 권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 이미 낙태는 여성의 인권의 문제이자 건강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OECD 20개 국 중에서 한국보다 낙태 시술이 어려운 나라는 멕시코와 아일랜드 단 두 국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낙태 범죄화와 여성의 처벌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음성적 낙태 시술로 이끌고, 여성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지난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불법 낙태 시술로 인해 매년 7만 명의 여성들이 사망하고 있다.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을 처벌하는 판결이 늘어나면 한국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작년 프로라이프의사회 고발로 낙태 수술비는 몇 백만 원 대로 치솟았고, 해외 원정 낙태도 등장한 상태다. 또한 지난 6월에는 애타게 낙태 시술 병원을 찾던 한 여성이 낙태 시술 병원을 소개해주겠다는 한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는 질문한다. 과연 낙태 범죄화와 여성 처벌 강화가 낙태를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여성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현저히 침해하면서 낙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의 상황과 의사에 상관없이 남편이나 연인의 의사에 따르도록 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법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2010년 10월 14일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