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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령 개악 저지 투쟁] 쓰라린 성찰
패배는 불가피하지 않았다

2011년 6월 23일

 

강령에서 사회주의적ㆍ반자본주의적 요소들을 도려내는 시도를 성공시킨 후 기뻐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과연 이런 사태 전개가 불가피했던가 하는 뼈아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과연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우경화 시도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인가? 우리가 만약 좀 더 일찍 대대적으로 반대 캠페인을 전개했다면 겨우 21표 차이로 강령이 개악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상처뿐인 승리’가 아니라 상처뿐인 패배를 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던가?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이 물음에 대한 정직한 대답은 그것이 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강령 개악 시도를 폭로하고 그것에 반대할 것을 호소하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반대 운동을 건설해 나갔다면 개악을 저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통합진보정당의 강령 논의가 더 오른쪽에서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안팎의 수많은 투사들과 노동자들을 기쁘게 할 중요한 승리였을 것이다. 나아가 이 나라 노동운동과 좌파의 전진을 위한 중요한 기여가 됐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지 우리 자신의 실책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치열하고 철저하게 그것을 평가하고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교훈을 이끌어내고 앞으로 같은 실책을 반복하지 않고 더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강령을 개악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3월 초부터 강령 개악에 맞선 대대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시작했었다.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이데올로기를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다함께는 … 당 강령 삭감 시도에 맞서 현 강령을 방어할 것이다. 다른 당내 좌파와 노동운동 활동가 들도 함께하자.”(‘현 강령의 사회주의 구절을 방어하며’, <레프트21> 52호(2011.3.12))

그리고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를 한 달반 정도 앞둔 때 다함께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다시 한번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 건설을 시작하자는 계획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반대 캠페인은 당대회를 고작 5일 앞두고 시작됐다.

왜 우리의 계획과 결정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우리는 한발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그것은 다함께 운영위원회의 이런 결정을 실행해야 할 주된 책임자였던 김인식 운영위원 동지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인식 동지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에서 반자본주의적 내용이 사라지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후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뜻하는 정치적 의미를 충분히 새겨보지 못했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이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자세가 필요했지만 ‘과연 막을 수 있겠나’라는 생각을 분명히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어떤 정치적 불명료함이 이런 문제를 낳았는지 규명하는 김인식 동지 자신의 평가 글은 조만간 추가로 제출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1987년 이후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적 성과가 만들어 낸 진보정당이고 정치적 대표체이다. 따라서 이 당의 강령 안에 있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는 내용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상징이었고 강령 개악은 그 상징을 제거하려는 시도였다. 그런 역사적인 후퇴가 전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 적잖은 부정적 효과를 줄 것이고, 반면 우파와 지배자들의 자신감과 기세를 높여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했다. 이것이 뜻하는 정치적 중요성을 이처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면 사활적으로 그것을 막아내야 한다는 점이 매우 분명했을 테니 말이다.

예컨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영국 노동당이 강령이나 정책에서 우경화를 시도할 때마다 당대회 등에 개입해 반대 시위와 캠페인을 벌여 왔다. 영국 노동계급에 기반한 대표적인 개혁주의 정당의 우경화가 영국 노동운동에 끼칠 부정적 효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강령 개악을 막아내는 운동을 앞장서 건설해야 할 동지의 생각에 정치적 불명료함이 남아 있다 보니,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나머지 동지들이 이것을 더 적극 비판하고 교정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달려들지 못하게 됐다.

강령 개악 반대 운동 건설은 어느새 다른 여러 과제들 중 하나로 취급됐고 그러다 보니 힘이 집중될 수가 없었다. 다른 여러 과제들을 처리하느라고 이 문제가 뒤로 미뤄지게 된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 과제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과제인지, 따라서 무엇에 더 힘을 집중해야 하는지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다가 늑장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념적 무장도 불충분했다. 강령 개정 반대 캠페인과 이틀 동안 당대회 장에서 벌인 활동과 주장 등을 되돌아보면 우리 자신의 이념적 무장은 아쉬운 점이 컸다. 즉, 캠페인이 뒤늦게 시작되고 치열한 토론과 고민ㆍ준비가 부족하면서 이데올로기적 무장도 부족했던 것이다.

강령 개악에 반대하는 광범한 캠페인을 건설하기 위해 좀 더 폭넓은 선동과 폭로에 주력할 것인지, 우리가 지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원칙의 선전에 주력할 것인지, 선동과 선전을 각각 어느 비중으로 어떻게 배치할지도 불분명했다. 우리의 주장과 글에도 이런 혼란이 반영됐을 것이다.

강령 개악 반대 캠페인의 중요성을 확실히 하면서 이런 정치적 관점에 바탕해 운동이 건설되지 못하다 보니 조직상에서도 허술함이 나타났다. 예컨대 당대회가 예정돼 있던 6월 18일에 유성기업 집중 연대 집회를 하자고 주도적으로 제안한 것은 다함께 연대협력국이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강령 개악 반대 캠페인을 핵심으로 유념해 두지 못한 것의 반영이었다. 결국 우리는 뒤늦게 당대회에 집중 대응하기로 결정하면서 유성기업 연대 집회에 회원들을 충분히 동원하지 못했다.

19일 당대회를 앞두고 강령 개악에 반대하는 주요 인사들에게 호소해서 공동의 대책과 대응, 행동 통일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도 매우 아쉬운 일이다. 처음에는 비록 다함께의 주도로 캠페인이 시작됐지만, 순식간에 더 광범한 사람들 속에서 응답이 나온 상황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할 필요는 명백했는데도 말이다.

또한 강령의 사회주의적 내용을 지켜내자는 우리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다함께에서 민주노동당 개입을 책임졌던 동지들은 왜 평소에 이런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건설해두지 못했던가라는 자성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대회 회의 전술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질의 응답을 최대한 간략하게 하고 강령 개정 찬반 토론에 집중해야 했는데, 주장성 질의 응답 시간이 너무 늘어지면서 정작 중요한 찬반 토론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최대한 대의원들을 지치게 만들어서 토론 없이 졸속적인 표결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치졸한 회의 전술에 오히려 말려든 셈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회의 대응은 치밀하지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강령 개악 시도에 굳건히 저항한 ‘30퍼센트의 힘’과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이런 움직임을 주시하며 응원해 준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묶어세우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의 강령과 방향을 설정하는 데 강력한 좌파적 압력을 창출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네트워크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에서 일종의 좌파 블록을 형성하는 데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 사안이 촉발시킨 논쟁의 장을 이용해 우리가 지향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원칙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내용을 더 널리 알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남아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과오를 직시하는 것은 자책하고 웅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지금,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는 세력에 맞선 불같은 투지로 충만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행태는 우리의 전의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지금 당장은 상처뿐인 승리를 얻고 좋아할지 몰라도, 또 선거에서 민주당과 손잡고 얻은 ‘성과’에 기뻐할지 몰라도, 그들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주도하는 실용주의와 우경화와 계급연합은 결국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으며 노동운동에 해를 끼치고 스스로를 시궁창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자본주의가 갈수록 위기와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아랍 혁명과 유럽의 저항이 보여 주는 아래로부터 급진화의 물결은 원칙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앞길에 빛을 던져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는 상처뿐인 승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미래와 역사 속의 승리가,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2011년 6월 22일

다함께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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