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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팔레스타인, 저항, 혁명 ─ 해방을 향한 투쟁 ①:
이스라엘 건국, 팔레스타인의 재앙

유대인 역사가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은 ‘나크바’(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의 역사를 치밀하게 연구한 저작을 써,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은 사전에 주도면밀히 계획된 인종 청소의 결과였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인 약 85만 명이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팔레스타인인 마을과 도시의 절반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건물 잔해와 돌멩이만 남았다.”(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열린책들, 35쪽)

이 끔찍한 범죄를 자행한 것은 시온주의자들이었다. 시온주의는 애초 유럽에서 벌어진 인종차별과 유대인 혐오에 대한 반응으로서, 또 나치의 유대인 인종 학살 ‘홀로코스트’의 그림자 속에서 형성됐다.

시온주의의 비극은 그 지도자들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식민주의의 선봉대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데에 있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이 유럽 국가들과 맺은 온갖 관계 중에서 영국 제국주의와 맺은 연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명됐다.

1917년 ‘밸푸어 선언’에서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은 전쟁 중에 군사적으로 점령했던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 지역으로 전환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선언을 낭독하는 전 이스라엘 총리 벤 구리온 ⓒ출처 이스라엘 정부

1917년 이후 영국 군정청의 예루살렘 군정사령관을 지낸 로널드 스토스의 말은 영국 관료들이 시온주의 운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집약적으로 보여 줬다.

스토스는 시온주의 식민지가 영국에 적대적인 지역 한가운데에 충성스런 “유대인들로 이뤄진 ‘얼스터’[영국이 개신교 신자들을 아일랜드에 이주시키는 식민 정책을 펼친 지역]”를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종류의 정착자 식민지는 당시 유럽 제국주의가 세계 다른 곳에서 쓰던 수법 중 하나였다.

예컨대 알제리는 프랑스 정착자들이 통치했고, 아랍계·베르베르계 알제르인들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시온주의 식민 점령자들이 이 지역 전체를 예속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현지 아랍계 지배자들 중에서 동맹을 찾아야 했다. 그런 아랍계 지배자들은 식민 점령자들과 나머지 인구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할 것이었다.

이 지역은 소왕국들로 분할됐고, 영국인 고문들이 막후에서 각각의 왕국들을 통치했다. 영국이 차지하지 않은 지역은 영국의 전쟁 동맹국이자 제국주의적 경쟁국인 프랑스에 넘어갔다.

영국이 시온주의자들과 맺은 협력 관계를 보고, 신생 왕국들을 지배한 아랍 왕족·부호·지주들은 자신들이 속았다고 느꼈으며 때로 민족주의적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은 제국주의 질서를 타도하려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기에는 그 질서 유지에 걸린 이해관계가 너무 컸다.

이런 제국주의 통제 체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파업·시위·항쟁 물결이 이 지역을 뿌리째 뒤흔들면서 분쇄됐다.

이집트와 이라크에서 군 장교들의 반란으로 왕정이 타도됐다. 시리아·모로코·튀니지·알제리에서는 식민 지배에 맞선 항쟁이 프랑스를 몰아냈다.

이와 달리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돼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 해방 염원이 분쇄됐다.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무장한 남녀 수만 명을 민병대로 조직해,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장악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냈다.

유엔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이 땅을 분할하라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시온주의자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철저하게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시온주의 반대는 유대인 혐오가 아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시온주의 반대가 포장만 바꾼 현대판 유대인 혐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못 본 체하는 것이다.

유대인 혐오는 특정 인물의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증오하는 것이다.

시온주의 반대는 (종교적 혹은 민족적으로) 배타적인 국가를 세운다는 생각을 정치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나치가 유럽에서 유대인을 말살하려 하고 서방 국가들이 제2차세계대전 말 ‘죽음의 공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문전박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압도 다수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유대교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나 유대교 전통이 필연적으로 이스라엘 지지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그 국가의 정책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유대인들이다.